최항

최항

[ 崔恒 ]

요약 조선 초기의 훈구파 대학자. 세조를 도와 문물제도 정비에 크게 공헌했다. 역사, 언어 등에 정통하고 문장이 뛰어났다. 1434년 알성문과에 급제한 후, 집현전 부수찬이 되어 정인지 등과 함께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했다. 1461년에는 양성지(梁誠之)의 《잠서(蠶書)》를 국역 간행하고 《경국대전》 편찬에 착수, 조선 초기의 법률제도를 집대성했다.
최항 선생 묘

최항 선생 묘

출생-사망 1409 ~ 1474
본관 삭령
정부
태허정 ·동량
시호 문정
활동분야 정치, 문학
주요저서 《태허정집》《관음현상기》

본관 삭령(朔寧). 자 정보(貞父). 호 태허정(太虛亭)·동량(imagefont梁). 시호 문정(文靖). 1434년(세종 16) 알성문과(謁聖文科)에 장원으로 급제, 집현전 부수찬(副修撰)이 되어 정인지(鄭麟趾) 등과 훈민정음(訓民正音) 창제에 참여했다. 1444년 집현전 교리(校理)로서 《오례의주(五禮儀注)》를 찬진(撰進)했으며, 1445년 응교(應敎) 때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 창제에 참여했고, 《동국정운(東國正韻)》,《훈민정음해례(訓民正音解例)》,《용비어천가보수(龍飛御天歌補修)》를 찬진했다. 1447년 문과중시(文科重試)에 5등으로 합격하였고 집현전직제학 겸 세자우보덕에 임명되었다. 1450년(문종 즉위) 선위사(宣慰使)로 명나라 사신을 맞았으며 우사간대부(右司諫大夫)로서 춘추관동지사(春秋館同知事)를 겸임, 《세종실록(世宗實錄)》 편찬에 참여했다.

1451년 좌사간대부(左司諫大夫)로서 수사관(修史官)을 겸임, 정인지 등과 《고려사(高麗史)》를 개찬했으며, 집현전 부제학(副提學) 때 《통감훈의(通鑑訓義)》를 편찬한 공로로 가자(加資)되었고, 이어 《문종실록(文宗實錄)》 편찬에 참여했다. 1453년(단종 1) 동부승지(同副承旨) 때 계유정난(癸酉靖亂)에 공을 세워 정난공신(靖難功臣) 1등에 책록, 도승지가 되었다. 1454년 이조참판으로 영성군(寧城君)에 봉해지고 1455년(세조 1) 대사헌이 되어 좌익공신(佐翼功臣) 2등에 책록되었다. 1458년 형조·공조 판서, 1460년 이조판서를 지내고, 1461년 양성지(梁誠之)의 《잠서(蠶書)》를 국역 간행하고 《경국대전》 편찬에 착수, 조선 초기의 법률제도를 집대성했다.

1463년 《동국통감(東國通鑑)》 수찬(修撰)을 시작하고, 신숙주(申叔舟) 등과 《어제유장설(御製諭將說)》을 주해했다. 1464년 《사서오경(四書五經)》에 구결(口訣)을 달았으며, 1467년 우의정·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이 되었다. 1469년(예종 1) 《경국대전》을 찬진했고, 이어 《무정보감(武定寶鑑)》을 수찬했다. 1470년 부원군(府院君)에 진봉(進封), 1471년(성종 2) 좌리공신(佐理功臣) 1등에 녹선되고 춘추관감사(監事)로 《세조실록(世祖實錄)》과 《예종실록(睿宗實錄)》의 편찬에 참여했다.

조선 초기의 훈구파(勳舊派)의 대학자로서 세조를 도와 문물제도 정비에 크게 공헌했으며, 역사·언어 등의 분야에 정통하고 문장이 뛰어나 명나라에 보내는 사신의 표전문(表箋文)은 거의 도맡아 썼다. 문집에 《태허정집(太虛亭集)》, 《관음현상기(觀音現相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