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1세

찰스 1세

[ Charles I ]

요약 스튜어트왕조의 영국 왕(재위 1625∼1649). 악정(惡政)으로 의회에서 권리청원이 제출되어 비난당하자 의회를 해산하고 11년간 의회를 소집하지 않았다. 그러나 스코틀랜드의 반란처리 비용을 위해 의회를 소집하였다가 의회와 정면대립, 청교도 혁명으로 확대되어 결국 처형당하였다.
말 탄 찰스 1세의 초상

말 탄 찰스 1세의 초상

출생-사망 1600.11.19 ~ 1649.1.30
국적/왕조 영국 스튜어트왕조
재위기간 1625년 ~ 1649년
활동분야 정치

제임스 1세의 차남. 그는 형 헨리가 죽음으로써 황태자가 되었으며, 즉위 직후에 앙리 4세의 딸 앙리에타 마리아와 결혼하였다. 총신(寵臣) 버킹엄 공작의 실정이 국민의 불만을 산데다가, 카디스 원정, 라로셰르의 위그노 구원, 그리고 30년전쟁에서의 덴마크 왕에 대한 전쟁비용 제공 등, 무익한 대외정책에 국고를 탕진하고 국민에게 중세를 과하였기 때문에, 1628년의 의회에서 권리청원이 제출되어 악정을 비난당하였다. 왕은 이것을 인정하기는 하였지만, 이듬해에 의회를 해산하고 그 후로는 11년간 의회를 소집하지 않았으며, W.로드와 T.W.스트래퍼드를 등용하여 친정을 실행하여 선박세 등의 불법과세를 강요하였다.

그러나 스코틀랜드에 강제로 국교(國敎)를 시행하려고 하여 1640년에 스코틀랜드에서 반란을 초래하였다. 이 반란에 대한 처리비용에 곤경을 겪자 단기의회, 그리고 이어 장기의회를 소집, 1642년에는 스스로 하원에 나가 지도급 의원 5명을 체포하려 한 것이 드디어 의회와의 정면대결을 초래하였는데, 이것이 그 해 여름의 청교도혁명으로 확대되었다. 1646년에 왕은 네이즈비전투에서 패배하였으며 이듬해 항복하고 유폐되었다. 그는 한때 와이트섬으로 피신하여 가서 스코틀랜드군과 통모(通謀)하여 제2차 내전을 일으켰으나 실패하고, 1649년 1월 재판결과에 따라 ‘국민의 적’으로서 처형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