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자소

주자소

[ 鑄字所 ]

요약 조선시대 활자의 주조를 담당하던 관청.
주자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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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인쇄 업무를 담당하기 위해 1403년(태종 3) 설치하여 승정원(承政院)에 소속시키고,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 이직(李稷), 총제(摠制) 민무질(閔無疾), 지신사(知申事) 박석명(朴錫命), 우대언(右大言) 이응(李膺) 등으로 하여금 활자를 만들도록 하였다. 이것이 조선 최초의 금속활자인 계미자(癸未字)이다. 서울 남부 훈도방(薰陶坊)에 있던 관청을 1435년(세종 17) 경복궁 안으로 옮겼으며, 1460년(세조 6)에는 교서관(校書館)으로 소속을 옮기고, 전교서(典校署)라 개칭하였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정3품 아문으로 다른 관직을 겸임하는 판교(判校) 1명, 교리(校理) 1명, 별좌(別坐)와 별제(別提), 박사 2명, 저작(著作) 2명, 정자(正字) 2명, 부정자(副正字) 2명의 관리가 있었다. 그리고 인쇄와 관련된 전문 장인으로는 금속활자를 만드는 야장(冶匠) 6명, 글자를 나란히 배열하는 균자장(均字匠) 40명, 인쇄를 담당하는 인출장(印出匠) 20명, 글자를 주조하는 각자장(刻字匠) 14명, 구리를 주조하는 주장(鑄匠) 8명, 주조된 활자를 다듬는 조각장(雕刻匠) 8명, 인쇄 판형에 필요한 화양목을 다루는 목장(木匠) 2명, 종이를 재단하는 지장(紙匠) 4명이 소속되어 있었다. 장인의 구성을 보면 활자의 주조에서 책자 인쇄에 이르기까지 모든 부분이 전문 분야별로 나누어져 분업화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활자를 주조하는 경우 임시로 설치한 주자도감(鑄字都監)이나 지방 감영 또는 수어청(守禦廳)에서 만든 후 교서관으로 옮겨 인쇄하는데 사용하곤 하였다.

이후 정조 때 이르러 규장각을 내각, 교서관을 외각으로 삼아 관찬서를 편찬하다가 1794년 창경궁 안 홍문관 자리에 교서관을 새로 설치하여 감인소(監印所)라 하다가 태종 때의 예에 따라 주자소로 개칭하였다. 조선시대 주자소에서 주조한 활자 일부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참조항목

주자사실, 활자

역참조항목

갑인자, 경자자, 이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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