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목

조목

[ 趙穆 ]

요약 조선 중기 학자. 평생을 학문 연구에만 뜻을 두어 대학자로 존경을 받았다. 문장과 글씨에 뛰어났으며 예안의 도산서원과 봉화의 문암서원 등에 제향되었다.
월천서당

월천서당

출생-사망 1524 ~ 1606
본관 횡성(橫城)
사경(士敬)
월천(月川) ·동고(東皐)
활동분야 문학
주요저서 《월천집(月川集)》,《곤지잡록(困知雜錄)》

본관 횡성(橫城). 사경(士敬). 월천(月川) ·동고(東皐). 이황(李滉)의 문인. 1552년(명종 7) 생원시(生員試)에 합격, 성균관(成均館) 유생(儒生)이 되었다. 1571년(선조 4) 이조의 추천으로 동몽교관(童蒙敎官) ·공릉참봉(恭陵參奉)에 임명되었으나 사퇴, 후에 성균관의 천거로 집현전참봉(集賢殿參奉)이 되었다가 곧 사직했다.

1576년 봉화현감(奉化縣監)을 거쳐 1594년(선조 27) 군자감주부(軍資監主簿)로서 일본과의 강화를 반대하는 상소를 하였고 이듬해 장악원정(掌樂院正)으로 전임, 1601년 사재감정(司宰監正)을 거쳐 공조참판에 이르렀다.  평생을 청빈하게 지내며 학문 연구에만 뜻을 두어 대학자로 존경을 받았다. 문장과 글씨에 뛰어났으며 예천(醴泉)의 정산서원(鼎山書院), 예안(禮安)의 도산서원(陶山書院), 봉화의 문암서원(文巖書院) 등에 제향되었다. 문집에 《월천집(月川集)》, 저서로 《곤지잡록(困知雜錄)》이 있다.

참조항목

이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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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천서당

월천서당 경북 안동시 도산면 동부리. 월천 조목선생이 조선 중종 34년(1539)에 건립하였으며, 현판은 퇴계 이황의 글씨이다. 출처: doop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