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약종

정약종

[ 丁若鍾 ]

요약 정약용의 셋째 형으로 가톨릭 신자가 되었다. 1795년 이승훈과 함께 청나라 신부 주문모를 맞아들이고 한국 최초의 조선천주교 회장을 지냈다. 신유박해 때 서소문 밖에서 순교하였다.
선암정약종묘

선암정약종묘

출생-사망 1760 ~ 1801.2.26
본관 나주
별칭 세례명 아우구스티노
활동분야 종교·인문과학
주요저서 《주교요지(主敎要旨)》
주요작품 《성교전서(聖敎全書)》

본관 나주(羅州). 세례명 아우구스티노. 진주목사(晉州牧使)를 지낸 정재원(丁載遠)의 아들 셋째 아들이다. 위로 형 정약현과 정약전이 있고 동생 정약용(丁若鏞)이 있다. 젊은 시절에는 이익(李瀷)의 문인(門人)이 되어 성리학(性理學)을 공부하였다가 이후 도교(道敎)를 연구하였다. 그의 집안 형제들이 천주교를 받아들일 때 정약종은 여전히 도교에 심취하여 형제 중 가장 늦게 천주교를 접했다. 천주교 교리를 신봉하여 집안의 제사를 거부하였고 이때문에 가족과 떨어져 강건너 분원리에서 살았다. 가톨릭 신자가 된 이후 1795년(정조 19) 이승훈(李承薰)과 함께 중국 청(淸)나라 신부 주문모(周文謨)를 맞아들이고, 1799년 서울로 옮겨와 문영인(文榮仁)의 집에서 살며 한국 최초의 조선천주교 회장을 지냈다. 전도에 힘쓰면서 《성교전서(聖敎全書)》 집필 중인 1801년 2월 신유박해(辛酉迫害)가 일어나 형제들이 문초를 받게되자 스스로 체포되어 서소문 밖에서 참수, 순교하였다. 저서로는 한자(漢字)를 모르는 신도를 위해 우리말로 쓴 교리서 《주교요지(主敎要旨)》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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