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감록

정감록

[ 鄭鑑錄 ]

요약 조선 중기 이후 민간에 성행하였던, 국가운명·생민존망(生民存亡)에 관한 예언서·신앙서.

참서(讖書)의 하나인 이 책은 여러 비기(祕記)를 모은 것으로, 참위설(讖緯說)·풍수지리설·도교(道敎) 사상 등이 혼합되어 이루어졌다. 보통 《감결(鑑訣)》을 비롯하여 《동국역대기수본궁음양결(東國歷代氣數本宮陰陽訣)》《역대왕도본궁수(歷代王都本宮數)》 등 역대의 비기를 통칭하여 《정감록》이라 부르기도 하고, 내용의 중심을 이루는 《감결》만 가리켜 《정감록》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원본도 저자도 알 수 없는데다가 오랜 세월을 거쳐 민간에 전해오는 동안에 다양한 이본(異本)이 생겨 그 종류가 40∼50종류에 이른다. 또한 책 이름이라기보다는 정체불명의 말세예언(末世豫言)을 추종하는 민간신앙을 지칭하는 것으로 보기도 한다.

현재 이 제목이 붙은 책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① 규장각본 《정감록》:필사본. 1책, ② 김약술(金若述) 소장본 《정감록》:필사본. 1책, ③ 김용주(金用柱) 발행 《정감록》:활자본. 국판. 163면. 1922년 발행, ④ 《비난정감록진본(批難鄭鑑錄眞本)》:활자본. 4×6판. 100면, ⑤ 자유토론사 장판(自由討論社藏版) 호소이 하지메[細井肇] 편저 《정감록》:4×6판 등을 들 수 있다.

《정감록》의 원전 격인 《감결》은 조선의 선조인 한륭공(漢隆公)의 두 아들 이심(李沁)·이연(李淵)과 조선 멸망 후 일어설 정씨(鄭氏)의 조상이라는 정감(鄭鑑)이 금강산에서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는 형식으로 엮어져 있다. 그 내용은 조선 이후의 흥망대세(興亡大勢)를 예언하여 이씨의 한양(漢陽) 도읍 몇백 년 다음에는 정씨의 계룡산(鷄龍山) 도읍 몇백 년이 있고, 다음은 조씨(趙氏)의 가야산(伽倻山) 도읍 몇백 년, 또 그 다음은 범씨(范氏)의 완산(完山) 몇백 년과 왕씨(王氏)의 재차 송악(松嶽:개성) 도읍 등을 논하고, 그 중간에 언제 무슨 재난과 화변(禍變)이 있어 세태와 민심이 어떻게 되리라는 것을 차례로 예언하고 있다.

현재도 전해오고 있는 것은 이들의 문답 외에 도선(道詵)·무학(無學)·토정(土亭)·격암(格庵) 등의 예언집도 있다. 이에 관한 가장 오랜 기록은 1785년(정조 9) 홍복영(洪福榮)의 옥사사건 기록에서 나온다.

비록 허무맹랑한 도참설·풍수설에서 비롯된 예언이라 하지만, 당시 오랜 왕정(王政)에 시달리며 조정에 대해 실망을 느끼고 있던 민중들에게 끼친 영향은 지대하였다. 실제로 광해군·인조 이후의 모든 혁명운동에는 거의 빠짐없이 정감록의 예언이 거론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반면 우매한 백성들이 이 책의 예언에 따라 남부여대(男負女戴)하고 십승지지(十勝之地)의 피란처를 찾아 나서는 웃지 못할 희극을 수없이 연출시킨 것은 이 《정감록》의 악폐였다.

역참조항목

계룡산, 조선의 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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