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백

이후백

[ 李後白 ]

요약 조선 중기의 문신. 대사간·이조판서, 호조판서 등에 이르렀다. 인성왕후 복상문제 때 만 2년상을 주장, 실행하게 했다. 청백리에 녹선, 종계변무의 공으로 광국공신 2등, 연양군에 추봉되었다. 저서《청련집》이 있다.
출생-사망 1520 ~ 1578
본관 연안
계진
청련
시호 문청
활동분야 정치
주요저서 《청련집》

본관 연안(延安). 자 계진(季眞). 호 청련(靑蓮). 시호 문청(文淸). 16세 때 향시(鄕試)에 장원, 1546년(명종 1) 사마시(司馬試)를 거쳐 1555년 식년문과에 급제, 1558년 승문원박사(承文院博士)가 되었다. 1563년 사가독서(賜暇讀書)를 하고 1567년 전한(典翰)이 되었으며 1569년(선조 2)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어 도승지·이조참판 등을 지내고 1573년 주청사(奏請使)로 명나라에 다녀와 대사간·이조판서 등을 지냈다. 인성왕후(仁聖王后)의 복상문제(服喪問題)가 일어나자 만 2년상을 주장, 실행하게 했으며 1578년(선조 11년) 호조판서에 이르렀다. 그해 함양에 성묘를 갔다가 병을 얻어 사망하였다.

청백리에 녹선, 종계변무(宗系辨誣)의 공으로 1590년 광국공신(光國功臣) 2등, 연양군(延陽君)에 추봉(追封)되었다. 이후백은 함흥(咸興)의 문회서원(文會書院)과 강진(康津)의 서봉서원(瑞峯書院) 등에 배향되었다. 특히 강진은 외조모의 친정이 있던 곳으로, 이후백이 오랜 기간 머물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서원철폐령으로 서봉서원이 철폐되자, 강진의 유림은 1924년 박산서원(博山書院)을 새로 세우고 이후백을 배향하였다. 저서에 《청련집(靑蓮集)》이 있다.

역참조항목

도동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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