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연

이지연

[ 李止淵 ]

요약 조선 후기 순조, 헌종 때의 문신. 조인영과 절친하였다. 헌종 때에 우의정에 임명되고 국정을 총괄하였다. 전정의 문제로 떠오른 관도결을 금지하는 등의 정책을 시행했고, 천주교 탄압을 주도하였다. 문집《희곡유고》등이 있다.
출생-사망 1777 ~ 1841
본관 전주(全州)
경진(景進)
희곡(希谷)
시호 문익(文翼)
주요저서 《희곡유고》 《장의공자손보(章懿公子孫譜)》

본관 전주(全州). 경진(景進). 희곡(希谷). 시호 문익(文翼). 1805년(순조 5) 진사시 및 별시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이듬해에 중시문과(重試文科)에 급제하여 승문원에 들어갔다. 중앙에서 지평 ·병조좌랑 ·예조참판 ·예조판서 등을 맡았으며 경상도관찰사 ·한성부판윤 ·광주유수 등을 역임하면서 지역 행정을 보기도 하였다.

1823년 상업 등을 관장하는 비변사 공시당상(貢市堂上)에 임명되고, 그 후로도 평시서제조(平市署提調) ·호조판서 등을 맡아 실무 능력을 발휘하였다. 순조로부터 헌종을 보도하도록 위촉받은 조인영(趙寅永)과 절친한 인물로서, 1837년(헌종 3)에 우의정에 임명되고 박종훈(朴宗薰)을 이어 이듬해 2월부터 국정을 총괄하였다. 이즈음 당시 전정(田政)의 문제로 떠오른 관도결(官都結)을 금지하는 등의 정책을 시행하였으며, 천주교 탄압을 주도하였다. 1840년 대사간 이재학(李在鶴) 등으로부터 탄핵을 받아, 수렴첨정 중이던 김조순(金祖淳)의 딸 순원왕후(純元王后)에 의해 과거 효명세자(孝明世子)의 대리청정에 불만을 가졌으며, 권력을 농단했다는 모호한 죄명으로 함경도 명천에 유배되어 죽었다. 문집으로 《희곡유고》, 편서로 《장의공자손보(章懿公子孫譜)》가 있다.

참조항목

희곡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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