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영

이정영

[ 李正英 ]

요약 조선 후기 현종, 숙종 때의 문신. 병자호란 후 세자가 볼모로 선양에 갈 때 사서로 시종하였다. 평안도관찰사, 산릉도감당상,이조판서, 돈령부판사등을 지냈다. 글씨에 능해, 전서·주서에 뛰어났다. 글씨《이순신명량대첩비》등이 있다.
출생-사망 1616 ~ 1686
본관 전주
자수
서곡
시호 효간
주요작품 《이순신명량대첩비》 《민기신도비》

본관 전주(全州). 자 자수(子修). 호 서곡(西谷). 시호 효간(孝簡). 1636년 별시문과에 급제, 병자호란 후 세자가 볼모선양[瀋陽]에 갈 때 사서(司書)로 시종하였다. 정언(正言)·수찬(修撰)·응교(應敎)를 역임, 1640년 효종이 즉위하자 재차 정언이 되고 교리(校理)·헌납(獻納) 등을 지냈으며, 1651년 교리로서 술이 취해 경연에 나갔다가 파직되었다. 그후 겸사서(兼司書)·이조정랑(吏曹正郞)을 거쳐 1660년(현종 1) 대사간이 되고 이듬해 진위 겸 진향부사(陳慰兼進香副使)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와 평안도관찰사가 되었다.

1672년 한성부판윤 때 재차 동지부사(冬至副使)로 청나라에 갔다가 이듬해 돌아왔다. 1674년 산릉도감당상(山陵都監堂上)이 되고, 1675년 이조판서에 승진, 1677년(숙종 3) 형조판서 때 시관(試官)이 되어 부정을 저지른 죄로 철원(鐵原)에 귀양갔다.

후에 풀려나와 돈령부판사가 되어 1685년(숙종 11) 기로소에 들어갔다. 글씨를 잘 썼는데 특히 전서(篆書)·주서(籒書)에 뛰어났다. 글씨로 《이순신명량대첩비(李舜臣鳴梁大捷碑)》(海南) 《민기신도비(閔箕神道碑)》(通津)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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