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진
[ 李元鎭 ]
- 요약
조선 중기의 문신. 광해군 때 대북의 폐모론에 반대, 이원익 등과 귀양갔다가 인조반정 후 풀려났다. 효종 때 제주 목사로 하멜 등 표착한 30여 명의 네덜란드인들을 서울로 압송했다.《탐라지》를 편수했다. 벼슬은 관찰사에 이르렀다.
출생-사망 | 1594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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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여주(驪州) |
자 | 승경(昇卿) |
호 | 태호(太湖) |
본관 여주(驪州). 자 승경(昇卿). 호 태호(太湖). 1615년(광해군 7) 대북의 폐모론에 반대하다가 이원익(李元翼) 등과 귀양갔다가 인조반정 후 풀려났다. 1630년(인조 8)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삼사(三司)를 거쳐 동래(東萊)부사가 되고 1653년(효종 4) 제주(濟州) 목사로 하멜 등 표착한 30여 명의 네덜란드인들을 서울로 압송하였고, 《탐라지(耽羅志)》를 편수하였다. 현종 때 부호군(副護軍)으로 산릉(山陵)을 지켰으며 벼슬은 관찰사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