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원

이시원

[ 李是遠 ]

요약 조선 후기의 문신. 건창의 할아버지. 승지·형조판서, 대사헌·이조판서 등을 지냈다. 병인양요 때 아우 지원과 함께 자결했다. 철종이 유일하게 신임한 신하라고도 한다. 학문, 정치의 많은 자료를 편집, 이건창의《당의통략》저술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시원선생묘

이시원선생묘

출생-사망 1790 ~ 1866
본관 전주
사직(子直)
사기(沙磯)
시호 충정(忠貞)
주요저서 《사기집》

본관 전주. 사직(子直). 사기(沙磯). 시호 충정(忠貞). 2대 국왕 정종의 후예이며, 19세기 말의 학자 겸 문신 건창(建昌)의 할아버지이다. 1815년(순조 15) 정시문과에 급제한 후 성균관과 삼사 등의 여러 관직, 태천 ·춘천의 수령 등을 역임하였다.

1833년에는 경기어사로 나가 민폐를 살피기도 하였다. 헌종 때에 한때 벼슬길을 끊었으나, 1849년 종2품 이상 재신(宰臣)의 반열에 올라 한성부 우윤, 개성부 유수를 역임하였다.

철종 때에 승지 ·형조판서 ·함경도관찰사를 맡았고 고종대에 대사헌 ·예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지냈다. 향리인 강화도에서 지내던 중 1866년 프랑스군이 침입하자(병인양요) 관원들은 모두 달아나고 대적할 방도가 없으므로, 울분을 참지 못해 아우 지원(止遠)과 함께 음독 자결하였다. 개성인 김헌기(金憲基)를 천거한 사실이 자주 거론되듯이 소외된 지역민에 대해 호의적이었으며, 그것은 가문에서 물려받은 양명학(陽明學)의 소양과 상통하였다.

특히 강화 교동에 살 때 그 명성을 들은 철종이 즉위 후 유일하게 신임한 신하라고도 하며, 개성의 삼폐를 바로잡기 위해 최고 권력자들과 충돌할 정도로 강직하게 직무를 수행하였다. 영의정이 추증되었다. 문집으로 《사기집》이 있으며, 학문과 정치에 대해 많은 자료를 편집하여 이건창이 《당의통략》을 저술하는 기반을 마련하였다.

참조항목

당의통략, 이건창

역참조항목

기려수필, 이시원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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