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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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李魯 ]

요약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즉시 조종도(趙宗道)와 함께 귀향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저서로는 《용사일기(龍蛇日記)》 《문수지(文殊志)》 《사성강목(四姓綱目)》 등이 있다.
이노교지

이노교지

출생-사망 1544 ~ 1598
본관 고성
여유
송암, 정의
활동분야 정치
출생지 경상도 의령
주요저서 《용사일기》 《문수지》 《사성강목》

본관 고성(固城). 자 여유(汝唯). 호 송암(松巖). 시호 정의(貞義). 경상도 의령 출생으로 조식(曺植)에게서 배웠다. 1564년(명종 19) 진사시에 합격하고 1584년(선조 17) 봉선전(奉先殿) 참봉이 되었다. 1590년 문과에 급제하였다. 이듬해 직장에 임명되었으며, 정여립(鄭汝立)의 옥사에 연루되어 억울하게 죽은 최영경(崔永慶)을 신원하자고 요청하였다. 또 일본에서 보내온 외교문서의 잘못을 지적하고 외교와 국방의 방안을 건의하기도 하였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즉시 조종도(趙宗道)와 함께 귀향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경상우도 초유사(招諭使) 김성일(金誠一)과 함양에서 만나 도처에 소모관(召募官)을 보내어 창의하도록 하고 군량을 모았으며, 그 종사관(從事官)으로 활동하였다.

한때 관찰사 김수(金睟)에 의해 곽재우(郭再祐)와 함께 탄핵받았으나 김성일의 두둔으로 무사하였다. 1593년에는 명나라 제독 이여송(李如松)에게 일본과의 화의를 비판하는 편지를 보냈다. 이후 형조좌랑 ·비안현감 ·정언 등을 역임하였다.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낙산서원(洛山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용사일기(龍蛇日記)》 《문수지(文殊志)》 《사성강목(四姓綱目)》 《송암문집》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