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완

윤지완

[ 尹趾完 ]

요약 조선 후기의 문신. 숙종 1년에 당쟁의 폐해와 송시열의 신구(伸救)를 건의하다 남인의 탄핵으로 삭직되었다. 서인과 남인의 집권에 따라 관직에 등용되고 관직을 잃고 유배되기도 하였다.
출생-사망 1635 ~ 1718
본관 파평(坡平)
숙린(叔麟)
동산(東山), 충정(忠正)
활동분야 정치

본관 파평(坡平). 숙린(叔麟). 동산(東山). 시호 충정(忠正). 1662년(현종 3) 증광문과에 을과로 급제, 1675년(숙종 1) 지평(持平)으로 시독관(侍讀官)을 겸직하여 경연(經延)에 나가 당쟁의 폐해와 송시열(宋時烈)의 신구(伸救)를 건의하다 남인의 탄핵으로 삭직되었다.

1680년(숙종 6) 경신환국으로 서인이 집권하자 부교리에 등용, 경상도 ·함경도관찰사를 역임하였다. 1682년 통신사로 일본에 다녀왔고, 이듬해 어영대장 ·예조판서 등을 역임하고, 1684년 경상도관찰사에 재임되었다.

1688년 병조판서, 이듬해 평안도관찰사를 지냈으나, 기사환국으로 남인이 집권함에 따라 관직을 잃고 유배되었다. 1694년 폐비민씨 복위를 지지한 소론이 등용됨으로써 다시 관직을 얻어 좌참찬(左參贊) ·우의정에 올랐고, 청백리(淸白吏)에 녹선되었으며 1703년 중추부영사가 되었다. 숙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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