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복

윤세복

[ 尹世復 ]

요약 일제강점기 때 활동한 독립운동가. 1910년 대종교에 입교하여 대동청년당을 조직하고, 1911년 중국으로 가서 학교 및 교당을 설립하여 독립사상을 고취하하는 한편,독립단 등을 조직하여 독립운동에도 힘썼으며, 포수단을 조직하여 일본군에 항전하기도 하였다.
출생-사망 1881.4.17 ~ 1960
본관 무송
상원
단애
본명 윤세린
활동분야 정치, 종교
출생지 경남 밀양
주요수상 건국훈장 독립장(1962)

본관 무송(茂松). 자 상원(庠元). 호 단애(檀崖). 본명 세린(世麟). 경상남도 밀양(密陽)에서 출생하였다. 밀양 신창소학교(新昌小學校)와 대구 협성중학교(協成中學校) 교사를 지냈다. 1910년 상경, 대종교에 입교한 후, 안희제(安熙濟)·서상일(徐相日)·신성모(申性模) 등과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을 조직하여 활동하다가, 1911년 대종교의 시교사(葹敎師)로 임명되자 가산을 정리하여 중국으로 갔다. 환런현[桓仁縣]에 동창학교(東昌學校), 마오쑹현[茂松縣]에 백산학교(白山學校), 닝안[寧安]에 대종학원(大倧學園) 등을 설립하여 5년간 교포들에게 독립사상을 고취하였다.

1916년 마오쑹현 등 여러 곳에 교당을 설립, 7,000여 명의 교인을 모아 시교(示敎) 겸 애국정신을 함양하는 한편, 흥업단(興業團)·광정단(光正團)·독립단 등을 조직, 독립운동에 힘썼다. 또한 창바이[長白] 등지에서 포수단(砲手團)을 조직, 홍범도(洪範圖)·조맹선(趙孟善) 등과 연합전선을 펴 일본군에 항전하였다. 1923년 제2대 교주 김헌(金獻)의 유언으로 대종교 제3대 교주가 되었다. 1942년 교단 간부들과 함께 일본경찰에 체포되어 무기형을 선고받았다. 8 ·15광복으로 석방, 1946년 귀국하여 교단을 정비하고 민주체제로 전환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역참조항목

신성모, 오근태, 이동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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