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싸움

울산싸움

[ 蔚山─ ]

요약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 울산 도산성(島山城)을 중심으로 조선·명나라 연합군과 왜군이 벌인 싸움.

1597년 조선을 재침략한 왜군 가운데,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이끈 약 1만 군대는 울산 도산에 성을 쌓고 주둔하였다. 명나라 경리(經理) 양호(楊鎬)와 제독(提督) 마귀(麻貴)는 이 성을 공략하기 위해 4만의 군대를 이끌고, 조선측 권율(權慄) 휘하의 군대 1만과 합류하여 새재[鳥嶺]를 넘어 경상도에 들어갔다.

12월 23일 성곽 준공이 거의 끝난 도산성을 포위해서 공격하였다. 10여 일 간의 격전으로, 왜군은 양식이 떨어지고 우물이 바닥나는 악조건 속에서도 몇 차례 위기를 넘기며 악전고투하다가, 많은 구원병의 도착으로 끝내 성을 지켰다. 1월 4일 조·명 연합군은 전투를 중지하고 경주지방으로 철수하였다.

1598년 9월 22일 마귀는 군사 2만 4000명을 이끌고, 별장(別將) 김응서(金應瑞)가 이끈 1만 5000명과 합류하여 다시 울산 도산성을 공략하였으나 실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