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 노부나가

오다 노부나가

[ 織田信長(직전신장) ]

요약 일본의 전국(戰國) ·아즈치시대[安土時代]의 무장(武將).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를 단절시켰고 전국전란의 시대에 무력으로 일본통일을 이룩하겠다는 의지를 표방하였다.
오다 노부나가 초상화

오다 노부나가 초상화

원어명 おだ のぶなが
출생-사망 1534.6.23 ~ 1582.6.21
국적 일본
활동분야 군사

무로마치 막부의 세력이 분열되는 전국시대에는 하극상에 의한 무력세력들이 등장하였다. 무사계급은 보다 많은 영지를 확보하기 위해 전쟁이 계속되고 있었다. 오다[織田] 가문도 지방의 슈고 다이묘를 섬기는 작은 호족세력이었으며 영지를 확장하기 위해 전쟁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노부나가의 아버지 노부히데[信秀]는 기요스 오다가(家)에서 행정사무를 담당하였던 인물이었다. 1549년 노부나가는 아버지 노부히데[信秀]의 뒤를 이어 기요스 성[淸州城]의 영주이자 오와리국[尾張國: 愛知縣]의 태수가 되었다. 1560년 동쪽의 세력이었던 이마가와 요시모토가 공격해오자 이를 오케하자마에서 기습하여 대승을 거두었다. 이를 계기로 그의 세력과 무명(武名)을 떨치게 되었다.

당시의 다이묘들은 교토로 진출하여 천하를 지배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1562년 노부나가는 배후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와 동맹을 맺었다. 1567년 교토진출을 가로막고 있는 미노와 오미에를 물리치고 이나바 산성[稻葉山城]을 함락시켰다. 이로써 노부나가는 교토로 진출할 수 있는 교두보를 확보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그는 천하포무(天下布武)라고 새겨진 인장(印章)을 사용하였다. 정복한 이나바 산성은 기후 성[岐阜城]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568년에는 13대 쇼군 요시테루의 동생 아시카가 요시아키[足利義昭]가 막부(幕府)의 잃어버린 영지를 회복해 줄 것을 청해 왔다. 이를 기회로 삼아 노부나가는 쇼군으로부터 무장으로 실력과 신뢰받았으며 교토에 진출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게 되었다.

1568년 9월 기후 성을 출발한 노부나가는 다이묘들의 치열한 경쟁을 물리치고 교토에 가장 먼저 입성하였다. 쓰러져 가는 무로마치 막부를 재건하고 실권을 장악하여 나갔다. 노부나가의 지원을 받은 아시카가 요시아키는 쇼군의 자리에 올랐고 노부나가에게 답례로 부장군(副將軍)에 임명하였지만 이를 거절하였다. 그는 천하통일에 관심을 집중하였기에 부장군이라는 벼슬은 보잘 것없는 것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노부나가는 쇼군 요시아키에게 니조 성[二條城]을 지어주고 황족과 막부 권력자들의 환심을 샀다. 그리고 쇼군 요시아키를 이용하여 지방의 다이묘들을 모두 자신의 세력하에 두고자 하였다.

천하를 통일하기 위한 전국의 다이묘들과 전쟁은 계속되었다. 1570년 4월 아사이씨와 아사쿠라씨의 연합군과 전투에서 벌였지만 이들을 정벌하지 못했고 그해 9월에는 이시야마의 난공불락의 성이지 사찰인 혼간지를 공격하다가 오히려 대패를 당했다. 1572년 교토 진출을 노리는 다케다 신겐과 전투에서 승리하였고 여세를 몰아 아시이씨와 아사쿠라씨도 정벌하여 모두 자결하게 하였다. 이때 노부나가에게 반기를 든 쇼군 요시아키를 교토에서 추방함으로써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를 멸망시켰다. 이후 계속되는 전투에서 이세의 나가시마 전투에서 철포를 앞세워 승리하였고, 대패를 경험했던 이시야마 혼간지를 정복하였다. 이로써 노부나가는 대부분 다이묘를 정벌한 실력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그동안 대부분의 다이묘를 평정하였으나 아직 추고쿠 지방에는 강력한 모리씨가 남아있었다. 노부나가는 하시바 히데요시에게 모리씨의 정벌을 명령하였다. 히데요시는 돗토리 정복하였고 1582년 5월 다카마쓰 성을 공략하다가 모리씨의 강력한 저항을 받고 위기에 몰리게 되었다. 5월 29일 노부나가는 히데요시를 지원하기 위해 직접 출병하였고 1582년 6월 2일 혼노지[本能寺]에서 여장을 풀었다. 그날 새벽 부하 아케치 미쓰히데[明智光秀]의 습격을 받고 자결하였다. 노부나가의 장남 노부타다[信忠]는 교토에서 반란군에게 잡혀 처형되었다. 다카마쓰에 있던 하시바 히데요시는 노부나가의 사망 전갈을 받자마자 회군하여 미쓰히데를 정벌하고 정권을 장악하였다. 그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이다.

오다 노부나가가 세력을 확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그의 근거지였던 오와리와 미노 지방이 비옥한 곡창지대로 경제력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그의 군대는 다량의 철포를 구입하였고 기동성이 뛰어났다. 그는 장기간에 걸친 전국전란의 시대에 통일의 서광을 비추어 준 전제무장(專制武將)으로 주목할 만한 여러 정책을 과감하게 실시하였다. 구체제 ·구관습의 타파, 새 인물의 등용, 금은 광산의 경영, 화폐의 주조, 도로 ·교량의 정비, 관소(關所: 검문소)의 폐지 등 혁신적인 정책으로 새 시대의 도래에 대응하였던 인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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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다 노부나가 갑옷

오다 노부나가 갑옷 일본 도쿄 야스쿠니신사옆. 유슈칸. 전쟁박물관. 출처: doop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