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키 요시타카
[ Kuki Yoshitaka , 九鬼嘉隆(구귀가륭) ]
- 요약
일본의 수군 무장. 도요토미 히데요시 수군 조직의 중핵을 맡으면서 많은 전공을 세웠다. 임진왜란 때 안골포해전에서 이순신에게 대패했다. 그뒤 도요토미측과 도쿠가와 이에야스 측 사이에서 벌어진 세키가하라싸움에서 도요토미측에 가담했다가 패했다.
원어명 | くき よしたか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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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사망 | 1542 ~ 1600 |
국적 | 일본 |
활동분야 | 군사 |
출생지 | 구마노 지방 |
구마노 [熊野海賊] 출신으로, 구마노 해적의 세력이 약화된 후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막하로 들어가 그 수군(水軍)의 장(將)으로 활약하였으며, 그
전공을 인정받아 시마[志摩] 지방의 영주로 임영되었다. 오다가 죽은 뒤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밑에서 여러 전투에 참가하여 수군 조직의 중핵을 맡으면서 많은
전공을 세웠다.
1592년(선조 25) 때 도도 다카도라[藤堂高虎]와 함께 수군 9,000여 명을
이끌고 한산도 앞바다에서 이순신(李舜臣)에게 패한 일본 수군을 구원하려고
출동하였다. 그러나 그 역시 안골포해전(安骨浦海戰)에서 이순신에게 대패하고,
섬[對馬島]에서 군선(軍船)을 관리하는 책임을 맡았다.
그뒤 일본으로 돌아가
현역에서 은퇴하고 지내다가 1600년 도요토미측과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측
사이에서 벌어진 세키가하라[關原]싸움에서 도요토미측인 서군(西軍)에 가담하였다가
패하였다. 이때 친아들인 모리다카[守隆]가 도쿠가와측인 동군(東軍)에 가담하여
부자가 서로 적이 되어 싸우는 비극을 맞았다. 모리다카는 자기가 세운 전공의
대가로 아버지의 구명(救命)을 이에야스에게 청하여 그 허락을 받았으나 그 소식이
도달하기 전에 자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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