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카가 요시아키

아시카가 요시아키

[ 足利義昭(족리의소) ]

요약 일본 센고쿠[戰國]시대 무로마치 바쿠후[室町幕府]의 마지막 쇼군[將軍]. 노부나가[信長] 포위망이라 불리는 반[反] 오다[織田] 동맹군을 제창하였으나 노부나가에 의해 교토[京都]에서 추방당하였다.
출생-사망 1537 ~ 1597

무로마치 바쿠후[室町幕府] 12대 쇼군[將軍] 아시카가 요시하루[足利義晴]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형인 요시테루[義輝]가 후계자로 내정되어 있었기에 어려서부터 불문에 들어가 수행을 쌓았다. 1565년, 요시테루가 마쓰나가 히사히데[松永久秀]에 의해 사망하고 요시아키 자신도 구금되었으나 옛 가신의 도움으로 교토[京都]를 탈출, 아사쿠라[朝倉] 가문에 몸을 의탁하였다. 

요시아키는 [明智光秀]를 중개자로 삼아 오다[織田] 가문에 의탁하여 1568년, [織田信長]의 도움으로 교토[京都]에 상경, 조정에 의해 무로마치 바쿠후의 15대 쇼군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노부나가가  요시아키를 제어하기 위해 갖가지 규율을 강요하며 횡포를 부리자  각지의 다이묘[大名]들에게 교지를 내려 다케다 신겐[武田信玄], 아사쿠라 요시카게[朝倉義景], 혼간지 겐뇨[本願寺顕如]를 주축으로 하는 노부나가 포위망을  결성하였다. 그러나 1573년 신겐이 갑자기 사망하여 노부나가 포위망이 와해되자 노부나가에 의해서 교토에서 추방당하고 15대에 걸쳐 내려왔던 아시카가 바쿠후[足利幕府]는 멸망하였다.  

요시아키는 추방된 이후에도 모리 데루모토[毛利輝元]나 우에스기 겐신[上杉謙信] 등에게 노부나가를 토벌할 것을 청했으나 각지의 다이묘들이 노부나가에 의해 격파되면서 그의 쇼군 복위는 물거품이 되었다. 그는 결국 다시 불문에 들어가 데루모도[輝元]와 히데요시[秀吉] 등의 원조에 힘입어 근근이 살다가 사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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