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제

여제

[ 女帝 ]

요약 여성 군주(君主).
측천무후

측천무후

중국에서는 예로부터 여성의 지위가 낮았고, 여자는 재주없는 것을 덕으로 삼을 정도였으므로 여제의 예로 들 수 있는 사람은 측천무후(則天武后)뿐이다. 그녀는 권력욕에다 냉정한 지모까지 겸비한 여성으로 당나라 고종(高宗)의 황후가 되었고, 고종이 죽은 뒤 690년 제위에 올라 국호를 주(周)로 바꾸었다. 무후의 음모가 성공한 것은 당나라 초기 문벌관료에게 반감을 가진 과거관료(科擧官僚)와 신흥지주층의 지지에 의한 것이지만, 무후가 죽은 뒤 당왕조는 부활하였고 그 뒤에 여제는 출현하지 않았다. 그러나 황후로서 권세를 떨친 자로서는 당나라 때 위씨(韋氏)와 청나라 때 서태후(西太后)가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모권제(母權制)가 남아 있어 상속도 모계를 정통으로 삼아 여권이 강하였으며, 하트솁수트(BC 15세기)로부터 아르시노에 2세(BC 3세기), 클레오파트라 1 ·2 ·3 ·7세(BC 1세기까지)에 이르는 여왕의 계보는 유명하다. 모두 형식상의 왕위에 그치지 않고 권세욕에 불타는 완전한 지배권을 행사하였다. 여성의 지위가 낮았던 고대 유럽에서는 여제를 볼 수 없다. 또 그리스도교는 모든 사람이 신 앞에서 평등하다는 원칙에서 여성을 남성과 정신적으로 평등하다고 가르쳐 왔는데, 봉건제가 지배하는 중세에서는 역시 여제가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근대에 이르러 ‘프랑스 르네상스의 어머니’로 불리는 프랑스 왕 마르그리트 드발루아는 그의 저서 《7일 이야기(에프타메롱)》로 알려졌고, 문예(文藝)의 옹호자이기도 하였다.

절대주의시대에 접어들자 군주는 곧 국가라는 관념에서 왕족의 결혼과 왕위계승 문제 등은 중대한 국가문제라는 점에서 많은 여제가 출현하였다. C.콜럼버스의 항해를 도운 에스파냐의 이사벨라, 영국의 메리 1세와 엘리자베스 1세, 영국혁명 뒤에 윌리엄 3세와 공동대관(共同戴冠)한 메리 2세가 있고, 또 절대주의시대 말기에 계몽주의의 영향을 받은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테레지아,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1세와 2세 등이 있다. 이들은 저마다 강력한 권력을 장악하여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그러나 프랑스혁명 뒤에는 군주의 지위도 바뀌어 점차 상징적 존재로 옮겨갔는데, 여왕 빅토리아는 입헌군주(立憲君主)로서 두드러진 존재였다. 현대에 와서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네덜란드의 율리아나(1980년 퇴위), 룩셈부르크의 샤를로트(大公:재위 1919~64) 등이 있다. 한국에서는 신라 때의 선덕(善德)·진덕(眞德)·진성(眞聖) 여왕이 있었으며, 다같이 신라문화를 크게 발전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