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정복

안정복

[ 安鼎福 ]

요약 18세기 조선 후기의 실학자. 주자학적인 경학(經學)설에 따라 만사를 판단하면서도 경학은 어디까지나 경세(經世)적이어야 한다는 지론이었다. 경세치용의 경세론을 학문과 현실에 연결시키고, 그 정신으로 불합리한 현실을 극복하려고 노력한 실학자였다.
출생-사망 1712 ~ 1791
본관 광주
백순
순암
시호 문숙
활동분야 실학
주요저서 《동사강목》《임관정요》《천학고》

본관 광주(廣州). 백순(百順). 순암(順菴). 시호 문숙(文肅). 이익(李瀷)을 스승으로 삼고 과거를 외면한 채 여러 학문을 섭렵했으며 특히 경학(經學)과 사학(史學)에 뛰어났다. 남인에 속했다. 그뒤 학문과 덕행이 널리 알려지면서, 1749년(영조 25)부터 만령전참봉·사헌부감찰·익위사익찬·목천현감 등을 역임하였다. 목천현감 때 저술한 교화행정서 《임관정요(臨官政要)》를 몸소 시행하였고, 덕곡마을에서는 향약을 실시하였다. 만년에는 중추부동지사(中樞府同知事)에 제수되었으나, 주위의 친구와 제자들이 천주교 탄압에 희생되었으며 슬하에 어린 손자·손녀만 남게 되었다. 죽은 뒤 좌참찬에 추증되었다.

주자학적인 경학설에 따라 만사를 판단하면서도 경학은 어디까지나 경세(經世)적이어야 한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었다. 또 경학의 해석에서는 이황(李滉) ·이익은 물론 주자의 해석까지도 바로잡는 데 주저하지 않는 고집스러움이 있었다. 저서 《하학지남(下學指南)》과 《잡동산이(雜同散異)》에서는 불교·도교와 역사·서학(西學)을 비롯한 여러 학문에 걸친 지적인 탐구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역사관계 저서에는 《동사강목(東史綱目)》과 《열조통기(列朝通紀)》 외에도 이익과의 역사문답인 《동사문답(東史問答)》이 있고, 한국의 여러 인물전기류가 있다. 특히 1778년(정조 2) 완성한 《동사강목》(20권)이 주자의 《자치통감강목(資治通鑑綱目)》을 모방하였다고 하지만, 자주적 ·객관적 ·실증적으로 한국사를 재구성하였다. 종래의 중국적 사관에서 벗어나 단군조선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한국사의 상한을 올려잡았을 뿐만 아니라, 종전에 모호하던 사실을 규명하였고, 외적의 침략에 항거한 장수들을 내세워 민족의 활기를 찾으려고 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동사강목》 본편(17권)과 《고이(考異)》와 《지리고(地理考)》에서 다룬 133항목에서 볼 수 있다.

한편 당시 유행하던 양명학을 이단으로 규정하여 비판하였고 천주교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천주교는 사위인 권일신 등의 남인학자들이 신봉하고 있었는데, 《천학고(天學考)》와 《천주문답(天主問答)》을 저술하여 이교(異敎)로 지목하는 등, 그릇된 외래문화에도 적극 반대하였다. 즉 그는 경세치용의 경세론을 학문과 현실에 연결시키고, 그 정신으로 불합리한 현실을 극복하려고 노력한 신보수적인 학자였다. 1783년 정조가 《동사강목》을 을람(乙覽)하였으며, 이 책은 근대에 박은식(朴殷植)·장지연(張志淵)·신채호(申采浩) 등의 민족사학자의 학문적·사상적인 계몽서가 되었고, 뒤에 문헌사학자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17~19세기의 경세성·비판성·실증성으로 특징되는 한국실학사에 기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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