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연원

심연원

[ 沈連源 ]

요약 조선 중기의 명신으로 영의정을 지냈으며 종묘에 배향된 인물이다.
출생-사망 1491 ~ 1558
본관 청송(靑松)
맹용(孟容)
보암(保庵)
시호 충혜(忠惠)
별칭 청천군(靑川君),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
주요수상 위사공신 2등

본관은 청송(靑松), 자는 맹용(孟容), 호는 보암(保庵)이다. 영의정 심회(沈澮)의 증손으로 아버지는 사인 심순문(沈順門)이며, 어머니는 감찰 신영석(申永錫)의 딸이다. 

김안국(金安國)의 문인으로, 1516년(중종 11) 생원을 거쳐 1522년(중종 17)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승문원의 권지정자(權知正字)를 거쳐 예문관의 검열(檢閱) 대교(待敎) 봉교(奉敎) 등을 지낸 뒤 감찰과 공조·예조·이조의 좌랑을 역임하였다. 1526년 문과중시에서 병과로 급제한 후에는 검상·사복시부정을 거쳐 1533년(명종 즉위년) 의주목사로 부임하였다. 1537년 내직으로 들어와 동부승지에 제수되었고, 이후 예조참판·병조참의·대사간·대사성·형조참판·한성부판윤·호조판서·예조판서·우찬성·우의정·좌의정 등 정부의 요직을 두루 거치고 1551년(명종 6)에 영의정에 올랐다.

그가 사복시 부정으로 있을 때는 진휼경차관으로 선발되어 백성들의 기근을 해소하는데 기여하였고, 예조참판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는 진향사(進香使)의 임무를 부여받아 외교관으로 명나라를 다녀왔다. 1542년(중종 37) 그의 손녀가 후일 명종으로 왕위에 오르는 경원대군과 혼인하여 외척이 되었고, 명종이 즉위한 해 을사사화가 발생하자 당시 호조판서겸지의금부사의 직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대윤(大尹) 일파 추국에 참여하였고, 이로 인해 위사공신(衛社功臣) 3등에 녹훈되었으며 1548년(명종 3) 청천군(靑川君)에 봉해졌다. 을사사화 당시 많은 선비들이 죽음을 당한 것에는 진심으로 안타까워 하며, 녹훈되었을 당시 이를 사양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는 문장에 능하여 중종실록과 인종실록을 편찬하는 총책임자의 역할을 수행하였고, 1558년(명종 13)에는 청천부원군(靑川府院君)에 진봉되었다.

그의 신도비가 경기도 김포시 통진면에 경기도 유형문화유산 제146호로 지정되어 남아있다. 명종의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시호는 충혜(忠惠)이다.

역참조항목

, 제주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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