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로돔 시아누크

노로돔 시아누크

[ Norodom Sihanouk ]

요약 캄보디아의 정치가 겸 인민사회주의연합 총재. 수상 겸 외무장관으로 취임, 국내적으로는 정치쇄신, 대외적으로는 중립주의 외교를 표방했다. 국외에서 국가 회복 운동의 지도자로서 투쟁을 계속해오다가 과도정부인 캄보디아 민족평의회 의장에 선출되었으며 헌법개정으로 왕위에 복귀하였다.
노로돔 시아누크 동상

노로돔 시아누크 동상

출생-사망 1922.10.31 ~ 2012.10.15
국적 캄보디아
활동분야 정치
출생지 캄보디아 프놈펜

프놈펜에서 출생했다. 사이공 및 파리에서 교육을 받았다. 1941년 4월 조부인 국왕 모니본 사망으로 왕위에 올랐다. 당시 프랑스 보호국이던 캄보디아의 독립을 염원하여 1945년 독립을 선언하고, 1949년 프랑스연합 내에서 캄보디아 독립을 획득하였다. 1955년 3월 왕위를 아버지 수라마리트에게 양위하고, 9월 총선거에서 압승하여 수상 겸 외무장관으로 취임, 국내적으로는 정치쇄신, 대외적으로는 중립주의 외교를 표방하였다. 1960년 4월 국왕이 사망하였을 때 왕위계승을 하지 않고 국가원수로 취임하였다. 따라서 캄보디아는 입헌군주국이지만 왕이 없는 상태였다.

1955년 이래 인민사회주의연합을 이끌며 거듭 내각수반으로서 정치의 중심을 감당하였고, 왕제(王制)사회주의의 추진을 내세웠다. 1954년 제네바 회의에서는 군사동맹 불체결을 선언하고, 1957년 영세중립법을 공포하였다. 1961년 라오스국제회의를 제창, 그 중립화에 공헌하였다. 1970년 3월 외유 중에 우파(右派)인 론놀 등에 의한 쿠데타로 국가원수직을 박탈당하고, 5월 베이징[北京]에서 캄보디아 민족연합정부를 세우고 망명정권의 수반이 되었다. 내전을 일으켰던 공산 크메르루주군(軍)이 캄보디아를 장악함에 따라, 1975년 9월 귀국하여 그들의 지지을 받고 국가원수직에 복귀하였으나 1976년 4월 크메르루주의 독재 강화로 사임하고, 중국에 망명객으로 머물었다.

1979년 2월 헹 삼린 정권을 앞세우고 캄푸챠를 장악한 베트남군을 몰아내기 위하여 1982년 반(反)베트남파가 집결하여 수립한 민주캄보디아연합의 불안정한 망명연립정부의 대통령이 되었다. 국외에서 국가회복운동의 지도자로서 투쟁을 계속해오다가, 1991년 귀국하여 과도정부인 캄보디아 민족평의회 의장에 선출되었으며 1993년 9월 입헌군주제로 환원하는 헌법개정으로 왕위에 복귀하였다. 2004년 10월 14일 아들인 노로돔 시아모니(Norodom Sihamoni)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