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메르루주

크메르루주

[ Khmer Rouge ]

요약 캄보디아의 급진적인 좌익(左翼) 무장단체.
대량학살박물관의 해골

대량학살박물관의 해골

구분 무장단체
설립일 1967년
설립목적 정권장악
주요활동/업무 캄보디아 통치
소재지 캄보디아

‘붉은 크메르’라는 뜻이다. 1967년에 결성된 크메르루주는 시아누크가 1970년 론놀의 우익(右翼) 군사쿠데타로 전복되자 농촌지역에 대한 대대적인 세력확장을 통해 마침내 1975년 4월 수도 프놈펜을 장악함으로써 정권장악에 성공하였다.

그러나 폴포트가 이끈 크메르루주정권의 4년간에 걸친 통치기간은 20세기 어느 좌파정권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잔인함과 무자비한 보복으로 얼룩졌다. 150만 이상의 캄보디아인이 학살되었고, 전문지식인층과 기술자층이 기회주의라는 죄명으로 죽어갔다. 이러한 비인간적인 야만(野蠻)과 살상(殺傷)은 서방에서 《킬링필드》라는 영화로 제작되어 전세계에 알려지기도 했다.

1979년 베트남군대와 이를 지지하는 캄보디아 공산동맹군의 공격으로 크메르루주는 전복되었고 이후 캄보디아에는 베트남의 지원을 받는 헹삼린정부가 들어섰다. 크메르루주는 이후 타이 국경 근처에 근거지를 확보하고 중국의 지원하에 무장 게릴라전을 전개했으며, 이로 인해 캄보디아내전은 계속되었다. 그후 유엔의 중재로 캄보디아내전 당사자들이 휴전에 동의하고, 1993년 5월 총선거를 실시하기로 합의했으나 크메르루주는 1993년 4월 선거불참을 선언하였다. 총선의 결과로 1993년 9월 캄보디아는 시아누크를 국왕으로 하여, 제1당인 민족연합전선의 지도자 노로돔 라나리드(시아누크의 아들)가 제1총리로, 그리고 프놈펜정권의 총리였던 훈센이 제2총리로 선출되어 정부를 구성하였다. 그러나 크메르루주는 1994년 7월 그들의 지도자인 키우삼판을 총리로 하는 임시정부를 수립하고 무장투쟁을 계속할 것을 선언함으로써 캄보디아의 평화정착을 어렵게 하고 있다.

그러나 크메르루주는 과거의 악명과 계속되는 좌경(左傾) 모험주의의 채택으로 그 세력이 현저히 약화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