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하눅빌 역사

씨하눅빌 역사

고대 캄보디아에서는 해양 무역이 주로 메콩강 하구를 통해 이어졌기 때문에 씨하눅빌을 포함한 캄보디아 남서부 해안 지역의 존재는 두드러지지 않았다. 1953년 캄보디아가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이후 해양 무역과 운송을 위한 심해항의 필요성이 제기되었고, 수심이 깊고 접근이 용이하다는 지리적 조건을 갖춘 껌뽕싸옴(지금의 씨하눅빌)에 항구를 건설하게 되었다. 이곳이 항구도시로 개발되자 캄보디아의 독립을 이끈 노로돔 씨하눅(Norodom Sihanouk) 국왕의 이름을 따서 "쁘레아 씨하눅", 약칭 "씨하눅빌"로 명명하였다. 즉,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씨엠립이나 프놈펜과 달리 씨하눅빌은 현대에 들어 개발된 도시인 셈이다.

이후 씨하눅빌의 흥망성쇠는 캄보디아의 국가 운명과 함께했다. 1960년대에는 산업적, 관광적 기반이 활발하게 개발되었으나, 1970년대 쿠데타와 내전, 크메르루주의 집권이 이어지면서 주요 도시이자 관문이었던 씨하눅빌은 격렬한 교전의 장소가 되었다. 1992년과 1993년 국제연합(UN)이 캄보디아를 관리하는 동안에는 호주, 벨기에, 프랑스의 파견대가 주둔하는 곳으로 사용되었다. 1993년 총선거를 거쳐 캄보디아 왕국이 재수립되고 국가가 점차 안정을 되찾자 씨하눅빌은 다시금 항구 도시로서 기능하기 시작하고 관광지로서도 개발되기 시작했다. 특히 2010년대 이후에는 중국을 위시한 외국 자본의 유입으로 관광과 부동산 개발이 크게 증대했다.

카테고리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