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지마립간

소지마립간

[ 炤知王 ]

요약 신라의 제21대 왕 (재위 479~500)
경주 서출지

경주 서출지

출생-사망 ? ~ 500
국적/왕조 신라
재위기간 479~500년
별칭 소지왕, 비처마립간, 비처왕
활동분야 정치

성은 김(金), 이름[諱]은 소지(炤知/照知)이며 비처(毗處)라고도 한다. 왕호(王號)는 마립간(麻立干)이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는 비처마립간(毗處麻立干), 비처왕(毗處王)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소지왕(炤智王)이라고도 한다고 되어 있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그가 신라의 제20대 자비마립간(慈悲麻立干, 재위 458~479)의 맏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서불한(舒弗邯) 미사흔(未斯欣)의 딸인 김씨(金氏)라고 나온다. 하지만 《삼국유사》 ‘왕력(王曆)’ 편에는 자비마립간의 셋째아들이며 어머니는 각간(角干) 미흔(未欣)의 딸이라고 되어 있다. 왕비에 관해서도 《삼국사기》에는 이벌찬(伊伐湌) 내숙(乃宿)의 딸인 선혜부인(善兮夫人)으로 기록되어 있지만, 《삼국유사》에는 기보 갈문왕(期寶葛文王)의 딸로 전하고 있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소지마립간(炤知麻立干)은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고 겸손하고 공경하는 태도를 잃지 않아 사람들이 모두 감복했다고 한다. 그는 479년(자비 22) 봄, 아버지인 자비마립간이 세상을 떠나자 그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자비마립간 때와 마찬가지로 소지마립간의 재위기간에도 신라는 고구려와 왜의 잦은 침략에 시달렸으며, 백제·가야와 동맹을 맺어 고구려의 남진(南進)에 맞섰다. 480년(소지 2) 겨울에는 말갈이 북쪽 변경을 침범해왔다. 이듬해 봄에도 고구려와 말갈이 호명성(狐鳴城) 등 7개의 성을 점령하고 미질부(彌秩夫)까지 쳐들어왔으나 신라는 백제·가야와 연합해 이를 물리쳤다. 484년(소지 6)에 고구려가 다시 쳐들어왔으나 이때에도 신라는 백제와 연합해 모산성(母山城) 아래에서 그들을 물리쳤다. 고구려는 489년(소지 11)에도 쳐들어와 호산성(狐山城)을 점령했고, 494년(소지 16)에는 견아성(犬牙城)을 포위해 공격했다. 신라는 이때도 역시 백제군의 지원을 받아 포위되어 있던 병사들을 구해냈다. 495년(소지 17)에는 고구려가 백제의 치양성(雉壤城)을 공격하자 소지마립간은 장군 덕지(德智)로 하여금 군사를 이끌고 가서 백제를 돕게 했다. 고구려는 496년(소지 18)과 497년(소지 19)에도 신라의 우산성(牛山城)을 공격해왔다. 왜인들도 482년(소지 4)과 486년(소지 8), 497년(소지 19)에 신라를 쳐들어왔으며, 500년(소지 22)에는 장봉진(長峰鎭)을 점령했다.

이처럼 신라는 고구려와 왜의 잦은 침략에 시달리고 있었으므로 소지마립간은 백제·가야와의 동맹을 공고히 하면서 동시에 곳곳에 성을 쌓아 국방체제를 강화하였다. 485년(소지 7)에는 구벌성(仇伐城)을 쌓았고, 486년(소시 8)에는 이찬(伊湌) 실죽(實竹)을 장군(將軍)으로 삼아 군정(軍政)을 맡기고, 일선(一善) 지역의 장정 3천 명을 징발해 삼년성(三年城)과 굴산성(屈山城)을 고쳐 쌓았다. 488년(소지 10)에는 도나성(刀那城)을 쌓았고, 490년(소지 12)에는 비라성(鄙羅城)을 다시 쌓았다. 493년(소지 15)에는 백제 동성왕(東城王, 재위 479~501)이 사신을 보내 혼인을 청해오자 이벌찬 비지(比智)의 딸을 보내 동맹을 공고히 했으며, 왜인의 침공을 막기 위해 임해진(臨海鎭)과 장령진(長嶺鎭)을 설치했다.

소지마립간은 행정체제를 정비하고, 백성의 삶을 보살펴 내부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484년(소지 6)에 오함(烏含)을 이벌찬(伊伐湌)으로 삼았고, 486년(소지 8)에는 내숙(乃宿)을 이벌찬으로 삼아 국정을 맡겼다. 487년(소지 9)에는 시조의 탄생지인 내을(奈乙)에 신궁(神宮)을 세웠고, 처음으로 각지에 역참(驛站)을 설치하고 관도(官道)를 보수해 통신체계를 정비했다. 이듬해에는 명활성(明活城)으로 옮겨가 있던 왕궁을 다시 월성(月城)으로 옮겼고, 490년(소지 12)에는 금성(金城)에 처음으로 시장을 열어 물자를 유통시켰다. 497년(소지 19)에는 모든 관리들에게 명해 지방관이 될 능력이 있는 자를 한 사람씩 천거케 했다.

또한 여러 차례 직접 각 지역을 돌아보며 민생을 살폈다. 480년(소지 2) 금성 지역에 가뭄이 들어 많은 백성이 굶주리자 창고를 열어 곡식을 나눠주었고, 481년(소지 3)에는 직접 비열성(比列城)을 방문해 병사들에게 군복을 주었다. 483년(소지 5)에는 큰 홍수가 나자 지방을 돌아보면서 백성들을 위로하고 피해 정도에 따라 곡식을 나눠 주었다. 488년(소지 10)에는 일선군(一善郡)을 방문해 홀아비와 과부, 고아, 자식 없는 노인들을 위로하고 곡식을 나눠주었고, 죄수들에 대해서도 대규모 사면을 단행했다. 이듬해에는 유랑하는 백성들을 다시 농촌으로 돌려보냈고, 492년(소지 14)에는 가뭄이 들자 왕에게 책임이 있다며 자신이 먹는 음식을 줄이게 했다. 496년(소지 18)에는 직접 남쪽 교외로 나가 농사를 시찰했다.

이처럼 소지마립간은 22년 동안 신라를 통치하면서 민생을 중시하는 정치를 펼쳐 성인(聖人)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그는 500년(소지 22) 겨울에 죽었으며, 뒤를 이을 아들이 없었으므로 내물마립간의 증손자로 그와는 6촌 사이인 지증왕(智證王, 재위 500~514)이 왕위를 계승했다.

한편, 《삼국사기》에는 소지마립간이 죽기 세 달 전인 500년(소지 22) 가을에 날이군(捺已郡)을 방문했다가 그곳에 사는 파로(波路)라는 사람의 딸인 벽화(碧花)라는 여인과의 사이에서 아들을 낳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벽화는 당시 16세였는데 매우 뛰어난 미인이었다. 파로는 그녀를 채색비단으로 덮어 소지마립간에게 바쳤는데, 왕이 음식인 줄 알고 열어보니 어린 소녀가 있었다. 소지마립간은 옳지 않다고 여겨 그녀를 돌려보냈으나 왕궁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녀에 대한 생각을 지우지 못해 평복을 입고 그녀를 찾아가 관계를 맺었다. 그렇게 두세 차례 그녀를 몰래 찾아다니다 고타군(古陁郡)에 있는 어느 할머니의 집에 묵게 되었는데,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그녀를 남몰래 궁으로 맞이해 별실에 두었고, 그녀는 아들을 하나 낳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또한 《삼국유사》 ‘흥법(興法)’ 편의 ‘아도기라(阿道基羅)’ 조에는 소지마립간 때에 아도(阿道) 화상이 3인의 시자(侍者)와 함께 과거 묵호자(墨胡子)가 머물렀던 일선군(一善郡)의 모례(毛禮)라는 사람의 집으로 와서 여러 해를 지내다가 죽었고, 그 시자 3인이 계속 그곳에 머물러 불경을 강독하면서 불교 신자가 생기기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기이(紀異)’ 편의 ‘사금갑(射琴匣)’ 조에서는 소지마립간이 488년(소지 10)에 천천정(天泉亭)에 갔다가 연못에서 나온 노인이 알려준 대로 거문고 갑(琴匣, 거문고를 보관하는 상자)을 화살로 쏘아 화를 모면할 수 있었다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진다. 왕이 천천정에 갔을 때 쥐가 나타나 사람의 말로 까마귀의 뒤를 따라가라고 했다. 왕은 말을 탄 시위로 하여금 까마귀의 뒤를 따라가게 했는데, 그는 남쪽의 피촌(避村)에 이르러 돼지 두 마리가 싸우는 것을 보다가 까마귀의 행방을 놓쳤다. 그때 연못에서 한 노인이 나와 봉투에 담긴 글을 전해주었는데 봉투에는 열어서 글을 보면 두 사람이 죽고, 그렇지 않으면 한 사람이 죽는다고 적혀 있었다. 시위에게서 봉투를 전해 받은 왕은 두 사람보다는 한 사람이 죽는 것이 낫다며 글을 보지 않으려 했으나 천문을 담당하던 일관(日官)이 두 사람은 서민이고, 한 사람은 왕이라며 봉투를 열어 글을 보라고 권했다. 왕이 봉투를 열어 글을 보자 거문고 갑을 쏘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고, 왕은 궁으로 돌아가 글 내용대로 거문고 갑을 쏘았다. 그랬더니 내전(內殿)에서 향불을 피우고 도를 닦던 중이 궁주(宮主)와 은밀히 간통을 하고 있던 것이 발견되었다. 그 뒤 신라에는 이 사건에 등장하는 돼지와 쥐, 까마귀를 기려 정월(正月)의 첫 해일(亥日)과 자일(子日), 오일(午日)에는 모든 일을 조심히 하며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고, 정월대보름은 오기일(烏忌日)이라고 하며 찰밥으로 제사를 지내는 풍습이 생겼다고 전해진다.

소지마립간 본문 이미지 1자비마립간

역참조항목

상대의 신라, 여력, 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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