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

소상

[ 塑像 ]

요약 정제한 점토로 만든 형상.

동양 ·한국의 소상은 발생적으로 둘로 대별된다.① 각지에서 개별적으로 발생한 것, ② 불교미술이 전파됨에 따라 중앙 아시아에서 중국 ·한국으로 전해진 것이다. 점토는 소상의 재료로서 얻기 쉬우므로 언제 어디서나 만들 수 있다. 현재 중국에서는 한대(漢代)의 명기(明器)에 소상이 있다. 불교미술에 의한 것은 이들 원시적인 소상과는 달리 기법적으로 뛰어났고, 그 효과도 동상 ·건칠상(乾漆像) ·석상 등에 뒤지지 않는다. 따라서 미술사 면에서 말하면 ②의 소상쪽이 훨씬 가치가 높다.

중앙 아시아는 이런 소상의 보고로서 남도(南道)에 속하는 로런 ·호탄 등과 북도(北道)에 속하는 쿠차 ·쇼르츄크 ·투르판 등 여러 석굴 사적에서는 수많은 훌륭한 소상이 발견되고 있다. 이것들은 어느 것이나 양식으로는 인도 북서부의 간다라 불교미술 계통에 속한다. 그러나 간다라에서는 거의가 석상에 한정되어 있는 점에서 이들 소상이 주로 중앙 아시아에서 발생되었다는 것은 명확하다.

중국에서 가장 서쪽에 있고, 가장 오래된 둔황석굴[敦煌石窟]은 중앙 아시아의 석굴사원과 똑같이 벽면과 소상으로 구성되어, 이와 같은 소상 기법이 불교를 따라 중국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중국에 전해진 소상기법이 그 후 어떤 경로를 밟아 당대(唐代)의 융성기에 도달하였는지 불분명하였으나, 마이지산석굴[麥積山石窟]의 새로운 발견으로 육조시대(六朝時代:3∼6세기)에도 다퉁[大同]이나 룽먼[龍門]의 석상과 나란히 소상이 활발하게 제작되었다는 점이 밝혀졌다. 마이지산 석굴에는 벽면에 있는 천인(天人)의 얼굴이나 손끝만을 소상으로 한 것도 있어 기법적으로는 도리어 중앙 아시아를 능가하는 것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당대에는 일반조각의 융성으로 소상도 성행되어 양혜지(楊惠之) ·장선교(張仙喬) ·의명당(依明堂) 등 소상의 뛰어난 작가도 많이 전해지고 있다. 양혜지는 소산수벽(塑山水壁)의 명수였다. 소산수벽이란 일종의 입체벽화로 벽면에 산용(山容)을 반입체적으로 소조하고 그 사이에 전각 ·수목 ·인물 등을 배치해서 불전(佛傳) 등의 한 장면을 연출시키는 것으로 현대 중국 사원에도 무수하게 보인다. 의명당이 소조한 보리상(菩提像)에는 먼지가 쌓이지 않았다고 하며, 그것은 상의 내부에 내장이나 골격을 장치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내장이 있는 불상이나 신상은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다.

당 이후 현대에 이르기까지 사관묘사(寺觀廟祀)에 수많은 소상이 제작되었으나, 조각이 쇠퇴하는 대세에 따라 볼 만한 것이 없다. 소상의 전형적인 작법은 먼저 목심(뼈대)을 얽어 세우고, 몸통에는 짚이나 새끼 같은 것을 감고, 그 위에 짧게 자른 짚을 섞은 점토를 붙여 대략의 모양을 만들고, 다음에 소량의 운모와 종이를 섞은 점토로 완성시키고 채색한다. 손가락이나 천의(天衣) 등은 철사를 심으로 쓰는 경우와 목조(木彫)로 만드는 경우가 있다. 눈에는 흑색을 끼우는 것도 있다. 기타 간단하게 조성한 목상에 점토로 엷게 살을 붙이는 방법도 있다. 이와 같이 조형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으므로 독존상 외에 군상을 조립하는 데도 적절하다. 현재 행해지는 브론즈상의 원형인 석고상도 조상의 일종이다.

참조항목

석고상, 점토

역참조항목

마이지산석굴, 소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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