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윤의 논핵

삼윤의 논핵

[ 三尹─論劾 ]

요약 1578년(선조 11) 신진사류(新進士類)가 주동이 된 동인(東人)이 집권세력인 서인(西人)을 탄핵한 사건.

윤현(尹晛)과 김성일(金誠一)은 같은 이조(吏曹)의 전랑(銓郞)으로 있으면서도, 당파가 달라 서로 반목하고 지냈다. 윤현의 숙부인 도승지 윤두수(尹斗壽), 경기감사 윤근수(尹根壽)가 서인으로서 당시의 집권세력이었기 때문에, 동인인 김성일은 자연히 윤현에게 눌리어 지냈다. 김성일이 서인에게 보복할 기회를 노리던 중 진도군수 이수(李銖)가 윤두수 등 3윤(尹)에게 뇌물로 쌀을 바쳤다는 정보를 입수하였다.

이 사건이 처음 경연석상에서 발설되자 사헌부·사간원에서 이수를 탄핵하였으나, 정작 3윤에게 쌀을 운반한 장세량(張世良)은 엄형(嚴刑)을 받으면서도 혐의사실을 끝까지 부인하였다. 그러나 부제학 허엽(許曄)은 사헌부·사간원이 수회자(收賄者)인 3윤을 처벌하지 않는다고 탄핵하여, 양사(兩司)에서도 3윤의 치죄(治罪)를 청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김계휘(金繼輝)·심충겸(沈忠謙) 등 서인은 3윤을 옹호하였고, 박대립(朴大立)·이산해(李山海) 등 동인은 3윤의 죄상을 공격하였다.

당시 박대립은 대사헌으로서 사헌부의 우두머리였고, 이산해는 대사간으로서 사간원의 우두머리였다. 그러던 중 진도군수 이수를 원망한 고을의 아전이 이수의 쌀 제공 사실을 증명하여, 3윤은 파면되고 서인의 세력도 꺾였다.

역참조항목

김계휘, 윤근수, 윤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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