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국동맹

4국동맹

[ Quadruple Alliance , 四國同盟 ]

요약 오스트리아, 러시아, 프로이센, 영국 등 대(對) 프랑스 전쟁을 이끌었던 네 나라가 1815년 11월 20일 빈 체제(Wiener System)의 유지를 위해 체결한 동맹이다. 강대국들 간의 군사적·외교적 협의기구 역할을 수행했으며 1818년 프랑스가 가입하여 5국동맹으로 확대되었다.

나폴레옹 전쟁에서 승리한 유럽의 군주들은 1814년 9월부터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전후 처리와 새로운 유럽의 질서에 대해 논의했다. 하지만 1815년 3월 엘바섬으로 유배되었던 나폴레옹이 다시 권력을 장악하자 빈 회의(Congress of Wien)는 1815년 6월 8일 서둘러 합의안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나폴레옹에게 전쟁을 선포하였고, 1815년 6월 18일 워털루 전투에서 승리하였다.

나폴레옹의 백일천하 이후 동맹국과 프랑스 사이에 새롭게 전후 처리를 둘러싼 협상이 진행되었다. 협상이 진행되던 1815년 9월 26일에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1세의 제안으로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의 세 군주가 형제국으로서의 우의를 강조하는 신성동맹(Heilige Allianz)을 결성하였다. 그리고 11월 20일 영국을 포함한 4개국은 제2차 파리조약으로 4국동맹을 결성하였다.

4국동맹은 영국, 오스트리아, 러시아 및 프로이센이 전시의 동맹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것을 그 내용으로 했다. 조약은 유럽 문제를 토의하고 공동 행동을 취하기 위해 4개 국의 정기적인 협의를 규정하여 회의를 통한 유럽의 협조 체제를 구성하였다.

동맹의 첫 회의는 1818년에 액스라샤펠(Aix-la-Chapelle, 지금 독일의 Aachen)에서 열렸다. 프랑스가 동맹에 동등한 자격으로 가입하는 것이 허용되어 5국동맹(Quintuple Alliance)으로 확대되었다. 두 번째 회의는 1820년 트로파우(Troppau, 지금 체코의 Opava)에서 열렸다. 이 회의에서 조인된 트로파우 의정서(Protocol of Troppau)는 자유주의 민족주의 혁명에 대한 공동 대응을 선언하였다. 1821년 라이바흐(Laibach, 지금 슬로베니야의 Ljubljana)에서 열린 세 번째 회의에서는 스페인과 이탈리아에서의 혁명들이 의제가 되었다. 회의는 오스트리아 군대에게 나폴리 헌법을 폐지시키고 절대군주제를 다시 세울 권한을 주었다.

하지만 영국이 다른 나라에서 일어난 혁명에 개입하는 정책을 포기하면서 동맹은 점차 분열되기 시작했다.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및 러시아는 다른 나라의 자유주의 혁명에 대한 무력 진압을 내세웠지만 영국은 이에 반대했다. 프랑스는 비록 입헌주의 체제를 무너뜨리기 위해 스페인을 침공하기는 했지만, 중재자로서의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1822년 베로나(Verona)에서 열린 회의에서는 스페인 문제와 그리스인들의 투쟁 문제가 다루어졌다. 영국은 스페인과 그리스에 대한 개입에 반대하였고 동맹국들의 불화가 커졌다. 이로써 결국 회의를 통한 협조 체제는 깨지고, 동맹은 와해되었다.

역참조항목

오스트리아

카테고리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