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논쟁

부활절논쟁

[ Paschal controversies , 復活節論爭 ]

요약 2~3세기에 부활절 날짜를 둘러싸고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간에 야기된 논쟁.

옛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의 노예에서 벗어난 것을 기념하여 거행하는 축제를 히브리어로 파스카(Pascha)라 하고, 유월절(逾越節)이라 번역한다. 유대교의 파스카 축제는 피로써 모든 인류를 구원한 예수 그리스도 부활축제의 예표(豫表)로서 부활축일을 정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동방교회에서는 유대교에서 초봄의 니산월(유대력의 1월) 14일에 파스카 축제를 지내므로 부활절도 요일에 관계없이 니산월 14일로 고정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훗날 이들을 '14일 교도'라고 불렀다). 이것이 율리우스력에 따른 부활절이며, 이날에는 단식하고 저녁에 떡을 나누어 성찬을 가졌다. 이에 대하여 로마 서방교회에서는 니산월 14일인 만월(滿月)이 지난 후 첫 번째 일요일을 부활축일로 지켰다. 이것은 그레고리력에 따른 부활절이며, 부활축일 직전의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주님께서 죽으시고 무덤에 계신 날'이라고 하여 금식하였다.

이러한 차이점으로 논란이 시작된 것은 폴리카르포스와 아니케투스의 회담에서였는데, 그뒤로도 잇달아 논쟁이 계속되었다. 양쪽의 역법(曆法) 차이로 인하여 부활절 날짜가 다른 경우도 생겼으나, 로마 교회가 알렉산드리아의 발전된 역법을 받아들여 525년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스가 공식적으로 이를 채택하였다. 영국 교회는 이전의 역법을 사용하였으므로 로마 교회에서 파송된 선교사와 논쟁이 일기도 하였으나 664년 휘트비 회의에서 로마측(側)의 승리로 끝났다. 1582년 그레고리우스 13세가 율리우스력을 고쳐 그레고리력을 공포함으로써 율리우스력을 사용하던 프로테스탄트 제국(諸國)과 동방정교회 간에 차이가 있었다. 동방정교회에서는 20세기 초까지도 율리우스력을 사용하여 로마가톨릭교회와 동방정교회가 서로 다른 날에 부활절을 지켰으나 지금은 거의 그레고리력으로 통일되었다.

역참조항목

빅토르1세

카테고리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