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채도끼
[ 扇形銅斧(선형동부) ]
- 요약
청동기시대에 사용된, 날이 부채꼴로 퍼진 청동도끼.
조양동에서 출토된 부채모양 도끼
청동도끼는 날과 머리부분이 부채꼴로 퍼진 부채도끼와 전체적으로 장방형을 띤 장방형 청동도끼가 있으나 부채도끼가 전형적이며 비파형 동검과 함께 출토되고 있다. 이 도끼는 가운데 허리가 가늘고 그 아래 날부분이 부채꼴로 크게 확대된 것이 특징이다. 몸통 상부에는 톱날무늬 등이 새겨져 있고 자루를 끼울 수 있는 구멍이 있다. 이러한 특수한 형식의 도끼는 중국 랴오닝성[遼寧省]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으며 그 대부분이 비파형 동검문화의 유적에서 발견된다. 차오양[潮陽] 십이대영자(十二臺營子), 진시[錦西] 오금당(烏金塘), 선양[瀋暘] 정가와자(鄭家窪子), 랴오양[遼陽] 이도하자(二道河子), 다롄[大連] 루상(樓上) 등지에서 다량 출토되고 있으며, 이도하자 ·강상(崗上) 등지에서는 거푸집[鎔范]이 발견되었다.
또한 8 ·15광복 전에는 뤼순[旅順] 지방의 즉주묘(卽周墓)와 유가탄(劉家畽)석묘, 목양성지(牧陽城址) 등에서 출토되었다. 이러한 유적들과는 좀 성격이 다르지만 소달구(騷達溝) 산정대관(山頂大棺) 및 푸순시[撫順市] 대화방(大伙房) 1호묘와 같은 간석기가 공존하는 돌널무덤에서도 각각 1개씩 출토되었다. 따라서 랴오닝성에서는 요서(遼西)지구보다 요동(遼東)지구에서 더 많이 보이므로 요동지역의 특징적인 요소로 볼 수 있다.
한편 한반도 지역에서는 의주 미송리동굴 상층유적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었고, 그 후 함남 영흥읍과 부여 송국리 집터에서 거푸집으로 발견되었다. 평북 토성리유적과 함북 어랑지방에서도 출토되었다고 하나 그것이 부채도끼인지는 알 수 없다. 이러한 도끼는 대부분이 길이 5cm 정도의 소형이나 영흥에서 출토된 것 중에는 10cm가 넘고 머리부분에 삼각문이 새겨진 것도 있다. 그 형태는 부채꼴을 이룬 날부분이 좌우로 뚜렷하게 확대되는 전형적인 것과 날부분의 호도(弧度)가 그리 뚜렷하지 않고 몸통 상반부에 몇 개의 융기선만을 돌린 간소한 형식이 있다. 이때 전자가 랴오닝성의 청동도끼들 중에서도 고식(古式)에 속하는 것들이다. 이러한 분류에 따른다면 한반도 출토의 도끼들은 고식적인 색채가 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한국의 미송리 ·영흥읍 유적 등이 랴오닝성의 청동기문화와 비슷한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부채도끼는 랴오닝성 청동기문화의 영향 아래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부채도끼 중 고식 청동도끼들은 비파형 동검과 같이 반출되고 있어 시기는 대체로 청동기시대 전기에 비정(比定)될 수 있다. 이 도끼는 한국식 동검이 유행하는 청동기시대 후기가 되면 몸에 어깨가 생기는 유견식(有肩式)으로 바뀌는데, 전남 영암과 부여 구봉리 유적에서는 날부분은 부채꼴을 이루나 몸통에 어깨가 생긴 과도기적인 변형된 부채도끼가 나타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