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차의 패전

부차의 패전

[ 富車─敗戰 ]

요약 1619년(광해군 11) 조선과 중국 명(明)나라의 연합군이 부차에서 후금(後金:뒤의 淸)의 군대와 맞선 싸움.

임진왜란 이후 누르하치[奴兒哈赤]의 세력이 점점 커져, 16년 자립하여 후금국의 한(汗)을 자칭하였다. 곧 명나라의 변경을 침략하자, 명나라에서는 조선에 대하여 구원병을 청하였다. 처음 광해군은 응하지 않다가 마지못해, 18년 강홍립(姜弘立)을 도원수, 김경서(金景瑞)를 부원수로 삼아 구원병 약 1만 3000을 보냈다.

강홍립이 거느린 군대는 요동성(遼東省) 관뗀[寬甸]에서 명나라 군대와 합류하여, 부차(지금의 老城 60리 지점)에서 후금과 회전하였으나, 명나라 군대는 대패하고 조선군도 포위되었다. 강홍립은 후금에 대하여 조선군의 출정이 본의가 아니었음을 알린 뒤, 후금에게 항복하였다. 강홍립의 항복은 출정 전에 "형세를 보아 향배(向背)를 정하라"는 광해군의 당부에 따른 것이다. 따라서 명·후금의 세력 교체기 때 이러한 양면외교정책으로, 광해군 때에는 외침의 화를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조 때는 이를 이용하지 못하고 병자호란을 맞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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