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

[ Stele for State Preceptor Beopin at Bowonsa Temple Site, Seosan , 瑞山 普願寺址 法印國師塔碑 ]

요약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보원사지에 있는 고려시대 탑비. 1963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

지정종목 보물
지정일 1963년 1월 21일
소재지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119-2번지
시대 고려시대
종류/분류 기록유산 / 서각류 / 금석각류 / 비
크기 전체 높이 4.25m, 비신 너비 1.2m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보원사지에 있는 고려시대 승려 법인국사(法印國師) 탄문(坦文)의 탑비(塔碑)이다. 탑비(부도비)는 승려의 출생에서 사망까지의 행적 등을 기록한 비석으로, 고승(高僧)이 입적한 후 그의 죽음을 추모하고 존경심을 나타내기 위해 승탑(부도)과 함께 세워졌다. 탑비의 비문 기록을 통해 이 탑비의 주인공이 탄문이며, 탄문이 입적한 975년(고려 광종 26)으로부터 3년 후인 978년(고려 경종 3)에 비석이 세워졌음을 알 수 있다.

법인국사 탄문

탄문(坦文)은 900년(신라 효공왕 4)에 태어나 975년 입적한 통일신라시대 ~ 고려시대의 승려이다. 장의사(莊義寺)의 신엄(信嚴)에게서 《화엄경(華嚴經)》을 배우고, 914년(신라 신덕왕 3) 구족계(具足戒)를 받아 승려가 되었다. 고려 태조로부터 별화상(別和尙)이라는 칭호를 받았고, 926년(고려 태조 9) 왕후 유씨(劉氏)가 임신하자 아들을 낳도록 기도를 드려 왕자(훗날의 광종)를 낳게 한 뒤 더욱 총애를 받았다.  942년(고려 태조 25) 황해도 연백군 지역에 메뚜기로 인한 피해가 심하자 《대반야경(大般若經)》을 강설(講說)하여 물리쳤다. 이후 혜종정종 두 왕에게도 스승 대우를 받았으며, 968년(고려 광종 19) 왕사(王師)에 올라 귀법사(歸法寺)의 주지를 지냈고, 974년(광종 25)에는 임금의 스승이 되는 고승에게 내리던 최고의 법계(法階)인 국사(國師)로 추대되었다. 이후 서산 보원사에 머물다가 975년에 입적하였다. 이에 경종은 탄문에게 '법인(法印)'이라는 시호(諡號)와 '보승(寶乘)'이라는 탑호(塔號)을 내렸다.

탑비의 구성과 양식

귀부·비신·이수로 구성되어 있으며, 비석의 전체 높이는 450cm이고, 이 중 비신의 높이는 240cm, 너비는 116cm이다.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 본문 이미지 1

귀부(龜趺)는 거북 모양으로 만든 비석의 받침돌로 비신과 이수를 지탱하는 역할을 한다.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 귀부의 얼굴은 용의 형상으로 묘사되었으며, 용두(龍頭)의 뺨에는 지느러미 모양의 비늘이 장식되어 있고,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다. 등에는 육각형 모양의 귀갑문(龜甲文)이 새겨져 있고, 그 안에 작은 꽃문양을 장식했다.

비신(碑身)은 탑비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부분으로 탄문(坦文)의 행적에 대한 기록이 새겨져 있다. 당대의 명문가였던 김정언(金廷彦)이 비문을 지었고, 한윤(韓允)이 구양순(歐陽詢)의 해서체(楷書體)를 따라 글씨를 썼으며, 김승렴(金承廉)이 비신에 글자를 새겼다. 비신의 앞쪽 아랫부분 일부가 훼손된 것을 제외하고는 판독에 어려움이 없을 정도로 보존 상태가 우수하다.

이수(螭首)는 탑비의 머리 부분으로 장식적인 역할과 비신을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이수 중앙에 마련된 제액(題額: 비석의 명칭이나, 비석의 주인공을 새긴 부분)을 중심으로 용, 구름 등의 문양을 조각하여 장식했다.

가치 및 의의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는 고려시대 국사로 추대되었던 탄문의 탑비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또한 비석에 새겨진 비문에는 탄문의 행적뿐만 아니라 당시의 사회제도, 불교문화 등에 대한 기록도 포함하고 있어 역사학·불교학에서 중요한 사료로 평가되며, 비석에 쓰인 글자는 금석학, 서예학 등의 분야에서 중요한 가치를 갖는다. 전체적인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귀부와 이수의 화려한 조각 장식은 고려시대 초기 탑비의 대표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역사적·학술적·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1963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역참조항목

운산면, 도비산

카테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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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동영상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비 고려의 법인국사 탄문을 기리는 비석 보물 제106호 법인국사 탄문은 고려시대 태조 왕건의 총애를 받으며 왕사와 국사로 활약한 승려로 당시 고려불교와 정치, 사상에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었다.  탄문은 보원사 중창을 주도했고 화엄종과 선종을 융합하기 위해 노력했다. 보원사는 화엄 10찰의 하나였으며 탄문이 보원사로 돌아올 때 1000명의 승려가 맞이했다고 전해진다. 탄문은 보원사로 돌아온지 얼마 지나지 않아 975년에 입적하였는데 3년 뒤인 978년에 법인국사탑비를 세웠다. 비석은 귀부와 이수를 갖추고 있으며 섬세하게 조각되었다. 출처: doo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