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공화국

베네치아공화국

[ Venetian Republic , ─共和國 ]

요약 중세~18세기 말기 이탈리아 북부 아드리아 해안의 베네치아를 중심으로 존속한 도시국가.
산타마리아델라살루트교회

산타마리아델라살루트교회

베네치아시(市)의 기원은 5세기경으로, 이미 라군(Lagoon:潟湖)의 작은 섬에 사람들이 거주하였다. 7세기에는 랑고바르드족(族)에게 쫓긴 사람들이 이주하면서 인구가 증대하였으며, 비잔틴제국의 공령(公領)이 되었다. 8세기에 지리적 이점을 이용하여 사실상 독립하였다. 9세기경에는 이미 아드리아해(海)에서 활발한 상업활동을 전개하여, 동서 중개무역을 행하였다. 즉 선진적인 동지중해 지역과 후진적인 서유럽 세계를 잇는 상업교역을 독점하여 부(富)를 쌓았다. 또 유럽에서 파견된 십자군과 결탁하여, 달마티아와 동지중해 여러 지역에 상권(商權) ·영토 ·거류지(居留地)를 획득하였다. 특히 1204년 제4회 십자군원정 때, 그들을 전면적으로 원조하여 건설된 라틴제국에서 큰 세력을 얻었다.

이 사이 지중해 패권을 둘러싸고 제노바와 격렬한 대립을 계속하였으며, 14세기 중엽에는 숙적(宿敵) 제노바를 격파하고 유럽 제1의 해상세력을 구축하였다. 이 공화국은 도제(Doge:총독)에 의해서 통치되었으나, 대상인으로 이루어진 도시귀족의 세력이 강대하였다. 13세기 말 대평의회(大評議會)의 구성원이 특정한 집안으로 제한된 것에 의하여, 이러한 경향은 한층 더 명확해졌다. 이탈리아 도시 중에서는 정치가 안정된 것으로도 알려졌으며, 후기 르네상스에 있어서 문화의 일대 중심지이기도 하였다. 14세기부터 진출을 개시하였다. 15세기에는 오스만 투르크의 발전에 따라 정치적 ·상업적으로 위협을 받았기 때문에, 더욱 영토를 확대하여 밀라노 기타 도시와도 싸웠다. 그러자 교황 율리우스 2세를 중심으로, 황제 막시밀리안 1세와 프랑스 ·에스파냐 등은 베네치아의 영토확대를 저지하기 위하여, 1508년 캉브레동맹을 체결하여 대항하였다. 15세기~16세기 에게해(海) ·펠로폰네소스반도 ·키프로스 등의 식민지를 투르크에게 빼앗겼으나, 아직도 크레타섬 ·코르프섬[島] 등에 식민지를 소유하여, 17세기에도 유럽 강국의 하나였다. 그러나 1797년 나폴레옹에 의해 정복되었으며, 얼마 후 오스트리아에 병합되었다. 1848~49년에 공화국이 재건되었으나 존속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