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토르만

코토르만

[ Bay of Kotor ]

요약 몬테네그로 남서쪽의 아드리아해에 있는 만(灣).
코토르만

코토르만

이탈리아어로는 카타로(Cattaro) 만이라고 한다. 유럽 최남단의 피오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실제로는 오렌산(Mount Orjen) 고산지대 평야에서 내려오는 보켈리강(Bokelj River)에서 파생된 하천계곡이다. 고대부터 사람이 살아왔고, 중세 마을이 잘 보존되어 남아 있기도 하다. 코토르를 비롯하여 리산(Risan)·티바트(Tivat)·페라스트(Perast)·헤르체그노비(Herceg Novi) 등 아름다운 마을이 자연경관과 잘 어우러져 관광명소로 잘 알려져 있다. 또 동방정교회와 로마가톨릭교회의 교회와 수도원들이 많아 종교순례지로도 유명하다.

리산은 BC 229년 일리리아(Illyria) 도시였고 BC 168년 로마에 복속되었으며, 코토르는 아크리비움(Acrivium)이라는 이름의 인근 도시로 처음 언급된다. 코토르는 중세 초 영향력이 가장 큰 달마티아에 속한 도시의 하나였으며, 불가리아를 거쳐 세르비아에 복속되었다. 14세기 후반에는 베네치아공화국이 점령하였고, 15세기 말에는 오스만투르크제국이 코토르만의 남서쪽을 점령하였다. 17세 말 오스만투르크제국이 축출되고 다시 베네치아공화국이 완전히 장악하였다. 이로 인하여 두 지역의 주민들은 종교적 차이가 확연한데, 오스만투르크제국이 점령하였던 지역은 러시아정교회 신자가, 베네치아공화국이 통치한 지역은 가톨릭 신자가 대부분이다. 종족적 차이도 뚜렷하여 동방정교회 신도들은 스스로 세르비아인 또는 몬테네그로인이라 칭하는 반면, 로마가톨릭교회 신자들은 크로아티아인이라고 칭한다.

19세기 초 코토르만 일대는 프랑스 제국의 일부인 일리리아 지방에 속하였으며, 1815년 오스트리아제국에 합병되어 달마티아의 일부가 되었다. 제1차세계대전 때 몬테네그로왕국이 이 만을 점령하려고 하였으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에 패퇴당하였다. 1918년 11월 7일 세르비아 군대가 해방시킨 뒤 세르비아-크로아티아-슬로베니아 왕국(구 유고슬라비아)에 속하였다. 1941년 이탈리아에 점령당하였으며, 1945년 이후 몬테네그로공화국의 영토에 속하였다.

코토르만은 여러 개의 작고 넓은 만들로 이루어져 있고, 좁은 수로들이 연결되어 있으며, 유럽에서 가장 정교한 항구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만의 후미는 형식적으로는 하천계(河川系)인데, 매우 격렬한 지각변동과 카르스트화가 이 강을 분리시켰다. 만의 가장 바깥쪽에는 티바트만과 작은 군항(軍港)이 있다. 바다쪽의 헤르체그노비만은 코토르만의 주입구에 해당된다. 조금 안쪽으로 북서쪽에 리산만이 있다. 육지쪽에는 요새화된 옛 도시에서부터 세인트존 궁전까지 긴 벽이 이어진다. 오렌산의 황량한 고원지대에는 작은 요새들로 뒤덮여 있다. 헤르체그노비의 사비나(Savina) 수도원 부근에는 16세기에 건립된 세인트사바(St. Sava) 러시아정교회 수도원이 있다. 또 헤르체그노비에서 동쪽으로 8마일 지점의 페라스트 맞은편의 작은 섬에는 베네딕토수도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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