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아랍주의

범아랍주의

[ Pan-Arabism , 汎─主義 ]

요약 모든 아랍민족들 간의 통일을 추구하는 운동.

넓은 의미에서 아랍민족들의 언어적 ·문화적 통일과 관련지을 수 있고 혹은 하나의 이상으로서 주권국가들 간의 연합으로든 또는 하나의 통일된 국가로서든 아랍민족들의 정치적 통합과 연관지을 수 있다.

범아랍주의는 세속적인 형태와 종교적인 형태를 모두 취하고 있는데, 세속적인 형태에서는 아랍국가들 간의 문화적 ·역사적 유대를 강조하고 비아랍세계와 대치된 상황하에서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열망(熱望)들을 강조한다. 한편, 종교적인 형태에서는 모든 아랍이슬람교도들의 결합요소로서 이슬람교를 강조하고 있다.

아랍통일의 의식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서서히 진전되었다. 처음으로 아랍통일을 요구한 정치지도자는 I.A.후세인이었는데, 그는 영국의 후원을 받으면서 1916년 오스만제국에 대항하는 아랍인들의 반란을 유도하였다.

그러나 전쟁이 끝난 이후 영국이 후세인에 대한 약속을 준수할 수 없게 되자 단일의 아랍국가라는 이상은 심각한 좌절을 겪게 되었다. 1930년대 및 1940년대에는 범아랍주의 정신을 자각하였던 사람들이 아랍국가 간의 결합요소로서 이슬람교의 중요성을 덜 강조하는 대신 아랍인들이 공통된 역사 및 언어에 의해서 통일된다는 비종교적 견해를 옹호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은 단일아랍국가사상을 지지하였고, 영국의 후원하에 1945년 아랍연맹(Arab League)이 구성되었다. 이 연맹의 목적은 아랍국가 및 아랍국가들 간의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활동 및 기타 활동을 통합시키려는 것이다.

한편, 1940년대 초에 창설된 아랍정당인 바트당(Ba’ath Party)은 당의 목표로서 모든 아랍인들이 하나의 국가로 통합되는 것을 표방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이집트의 G.A.나세르가 전아랍을 주도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1958년 시리아와 이집트가 통일아랍공화국을 구성하였는데, 이것은 아랍국가들의 지속적인 연방이나 동맹을 형성시키려고 한 노력이었으나, 결국 성공을 거두지 못하였다.

1970년대에 들어와서는 리비아의 M.카다피가 범아랍주의에 있어서의 종교적인 형태를 부활시키기도 하였다. 수십년에 걸친 이스라엘과의 적대상황은 아랍국가들에게 단결의 계기를 마련해 주었지만, 문화적 ·정치적 배타주의 세력의 존재, 아랍국가들 간의 경제적 불균형, 일부에 존재하는 비아랍 및 비이슬람교도 소수파 등의 요인으로 인하여 정치적인 의미에 있어서 범아랍주의는 이상을 넘어선 실현단계로 발전하는 데 지장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