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황

박황

[ 朴潢 ]

요약 조선 중기의 문신. 병자호란 때 의병을 모아 반격을 기도했으나 인조가 승낙하지 않아 왕을 따라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난이 끝난 뒤 볼모로 가는 소현세자를 수행했고 심기원의 역모사건에 연루되었다 풀려났다.
출생-사망 1597 ~ 1648
본관 반남
덕우
유헌·유옹

본관 반남, 자 덕우(德雨), 호 유헌(懦軒)·유옹(懦翁)이다. 사복시정(司僕寺正) 동언(東彦)에게 입양. 1621년(광해군 13)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1624년 검열(檢閱)에 오르고 설서(說書)·정자(正字)를 지냈다. 대사간·이조참의를 거쳐,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의병을 모아 반격을 기도하나 인조가 승낙하지 않아, 왕을 따라 남한산성으로 들어갔다.

1637년 난이 끝난 뒤 척화신(斥和臣) 17명을 압송하라는 청나라 요구에 극구 반대, 2명만 보내게 하였다. 볼모로 가는 소현세자를 수행하여 선양[瀋陽]에 갔다가 돌아와, 1638년 병조판서·대사헌을 지냈다. 이때 김상헌(金尙憲)·정온(鄭蘊)이 모함에 빠진 것을 구하고 사직하였다. 곧 대사간에 등용되고, 다시 선양으로 불려갔다 와서 대사헌·도승지를 지냈다. 1644년 전라감사로 있을 때 심기원(沈器遠)의 역모사건에 연루되어, 반역혐의를 받고 김해에 유배되었다가 곧 풀려나, 전주부윤(全州府尹)이 되었다. 서예에도 능하였다.

역참조항목

유헌집, 박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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