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경
[ 朴宗慶 ]
- 요약
조선 후기의 문신. 승지, 홍문관제학, 총융사, 병조·이조·호조의 판서, 훈련대장 등을 지냈으나 탄핵을 받아 양주목사로 좌천되었다.
금석집
출생-사망 | 1765 ~ 18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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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 반남 |
자 | 여회 |
호 | 돈암 |
시호 | 문숙 |
주요저서 | 《반남박씨오세유고》 |
주요작품 | 〈박준원신도비〉 |
본관 반남(潘南), 자 여회(汝會), 호 돈암(敦巖), 시호 문숙(文肅), 순조의 외숙(外叔)이다. 1790년(정조 14) 사마시에 합격하여, 음보로 동몽교관(童蒙敎官)을 거쳐 순안현령을 지내다가 사임하였다. 1800년 순조가 즉위하고 정순왕후가 수렴청정을 하자, 이듬해 부수찬으로 기용되었다. 또 그해 식년문과에 급제, 교리에 승진하였다. 승지·홍문관제학·총융사를 거쳐, 1809년 병조·이조의 판서, 훈련대장을 지냈다.
1812년 호조판서가 되었으나, 대사헌 조득영(趙得永)으로부터 임금의 외숙으로 복을 누리면서 여색과 뇌물을 탐하고 사감(私感)으로 살인하는 등 민원(民怨)이 많다는 탄핵을 받아 양주목사로 좌천되었다. 그뒤 어영대장·의금부판사를 거쳐 좌참찬에 이르렀다. 편서에 《반남박씨오세유고(潘南朴氏五世遺稿)》, 글씨에 〈박준원신도비(朴準源神道碑)〉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