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미
[ 朴瀰 ]
- 요약
남겨진 글씨나 그림이 많이 있으며, 청렴하기로 이름이 났었던 조선 중기 문인. 주요 작품으로 《참판박이서비》, 《영흥부사이수준갈》 등이 있다.
박미선생묘
출생-사망 | 1592 ~ 1645 |
---|---|
본관 | 반남(潘南) |
자 | 중연 |
호 | 분서 |
시호 | 문정 |
활동분야 | 정치 |
주요저서 | 《분서집》 |
주요작품 | 《참판박이서비》《영흥부사이수준갈》 |
본관 반남(潘南). 자 중연(仲淵). 호 분서(汾西). 시호 문정(文貞). 1603년(선조 36) 선조의 딸 정안옹주(貞安翁主)와 결혼하여 금양위(錦陽尉)가 되었다. 어릴 때부터 문예에 능했고 이항복(李恒福)에게 배웠으며, 장유(張維)·정홍명(鄭弘溟) 등과 사귀었다. 1638년(인조 16) 동지 겸 성절사(冬至兼聖節使)로 청나라에 다녀오고, 금양군(錦陽君)으로 개봉(改封)되었다. 글씨에도 능하였는데 많은 유묵(遺墨)이 있으며, 서체는 특히 오흥(吾興)의 체를 따랐다. 청렴하기로 이름이 났었다. 문집 《분서집(汾西集)》이 있고, 글씨는 《참판박이서비(參判朴彛叙碑)》 《영흥부사이수준갈(永興府使李壽俊碣)》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