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홍명

정홍명

[ 鄭弘溟 ]

요약 조선 중기 문신. 정치적으로 인조 초의 공신 김류의 권력에 대한 소장 관인들의 비판에 참여하여 ‘소서(少西)’의 일원으로 지칭되었다. 병자호란 후에는 척화파를 두둔했다. 주요 저서에는《기암집》,《기옹만필》등이 있다.
출생-사망 1582 ~ 1650
본관 연일(延日)
자용(子容)
기암(畸庵) ·삼치(三癡)
시호 문정(文貞)
활동분야 정치
주요저서 《기암집》,《기옹만필(畸翁漫筆)》

본관은 연일(延日), 자는 자용(子容), 호는 기암(畸庵)·삼치(三癡)이며.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선조 때 우의정·좌의정을 지낸 가사문학의 거목 송강(松江) 정철(鄭澈)의 넷째 아들로 (宋翼弼)과 (金長生)에게 배웠다. 1616년(광해군 8) 문과에 급제하여 에 들어가게 되었으나 북인들이 반대하자 귀향하였다. (仁祖反正) 후 예문관 검열로 등용되어 삼사와 이조(吏曹)의 여러 청요직(淸要職)과 병조참지·대사성·김제군수·이조참의 등을 역임하였다. 1626년(인조 4)에는 김류(金瑬)의 종사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오기도 했다. 때에는 전라의병장으로서 공주까지 올라왔으나 전쟁이 끝나 전투에 참여하지는 않았다. 1646년 대제학을 잠깐 지내고 내려간 뒤 대사헌·대제학에 다시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정치적으로 인조 초의 공신 김류의 권력에 대한 소장 관인들의 비판에 참여하여 ‘소서(少西)’의 일원으로 지칭되었다. 병자호란 후에는 척화파를 두둔하였다. 문장은 장유(張維)와 더불어 윤근수(尹根壽)의 고문풍(古文風)을 이어받은 것으로 평가되었다. 저서에 문집 《기암집》 《기옹만필(畸翁漫筆)》이 있다. 좌의정에 추증되었다.

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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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참조항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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