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판인쇄

목판인쇄

[ 木版印刷 ]

요약 목판(木板)을 사용하여 책을 찍어내는 인쇄방법.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필요한 용구에는 먹물 ·종이 ·먹솔 ·밀랍 ·기름판 등이 있다. 인쇄방법은 먹솔로 목판의 문자면에 먹물을 고르게 칠한 다음, 종이를 놓고 밀랍 또는 기름을 묻힌, 부드러운 털 뭉치로 만든 인체로 가볍게 골고루 문질러 찍어낸다. 이때 사용하는 먹은 송연묵(松煙墨)이 많으며, 먹물에는 잘 스며들고 번지지 않으며 증발이 잘 되게 하기 위하여 술을 적당량 타서 사용한다. 한국에서 확인된 최초의 목판인쇄는 704∼706년의 신라 성왕(聖王) 때 인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無垢淨光大陀羅尼經)》으로 한국에서 최초의 목판인쇄물일 뿐만 아니라 세계 최초의 인쇄물이다.

목판인쇄 본문 이미지 1

신라의 목판인쇄술은 고려에 전승되어, 1007년(목종 10) 총지사(摠持寺) 주지가 조각해서 인출한 《총지사보협인다라니경(摠持寺寶篋印陀羅尼經)》은 실감이 나는 불화(佛畵)의 모사(模寫)와 정교한 도각(刀刻)으로 이루어진 고려 목판인쇄의 정화(精華)이다. 고려의 목판인쇄는 1011년(현종 2) 이후의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 91년 이후의 《속대장경(續大藏經)》, 1237년(고종 24) 이후의 《재조팔만대장경(再雕八萬大藏經)》에 이르러 절정에 달하는데, 이들 《대장경》은 거란 및 몽골의 침입을 받고 국난을 불력(佛力)에 의해 극복하려는 서원(誓願)에 따라 국가사업으로 이룩된 것이다. 고려의 목판인쇄는 11∼12세기 초까지 크게 발전하여 닥나무 껍질에 의한 용지 제조술, 소나무 그을음에 의한 송연묵 제조술 등 관련산업도 발달하였다. 또 그 보급은 중앙뿐만 아니라 지방의 관청 및 민간에도 미쳐 성행하였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도 목판인쇄는 꾸준히 행하여져 1458년(세조 4)에는 해인사의 《팔만대장경》을 다시 인출하는 큰 사업을 벌였다. 조선시대에는 이렇게 관에서 인출한 관판본(官板本)보다 사찰판(寺刹板) ·서원판(書院板) ·사가판(私家板) 등으로 구분된 사판본(私板本)이 성행하여, 조사된 바에 따르면 불전(佛典)을 조각한 사찰이 120, 여기서 인출된 사찰판본만도 284종에 이른다. 사가본은 저자의 자손 ·문인(門人)이 그의 조상 및 스승의 시문집을 사비로 출판한 것이 많았는데, 약 50∼60년 만에 1번씩 씨족이 공동부담으로 출판한 족보도 사가판의 일종이다. 그러나 주자인쇄(鑄字印刷)가 활발해지고 불교가 억제되면서 관판본은 점차 사라지고, 사가판이 명맥을 유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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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표지 무늬를 찍는 목판

책의 표지 무늬를 찍는 목판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조선 후기. 출처: doop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