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필리베르 모방

피에르 필리베르 모방

[ Pierre-Phillibert Maubant ]

요약 한국에 최초로 들어와 활약한 서양인 선교사로 1837년 김대건 등을 마카오[澳門]의 오문신학교에 유학시켰다.
모방신부 현양비

모방신부 현양비

출생-사망 1803 ~ 1839
별칭 한국명 나백다록(羅伯多祿)
국적 프랑스
활동분야 종교
출생지 프랑스 바시

파리 외방전교회(外邦傳敎會) 소속 신부. 순교 성인. 한국명 나백다록(羅伯多祿). 프랑스 바시 출생. 1831년 파리 외방전교회 신학교에 입학, 1832년 중국 쓰촨성[四川省]에 갈 목적으로 출발하였다가 1831년(순조 31) 조선교구 교황대리 초대 감독에 임명된 브뤼기에르 주교와 함께 한국에 오기 위해 압록강까지 왔었으나 국경의 감시가 삼엄하여 입국을 포기했다. 만주 마가자(馬架子)에 머물다가 브뤼기에르 주교가 병사하자 1835년(헌종 1) 겨울 삿갓에 상복차림으로 얼음 위를 건너서 단신으로 입국, 이듬해 정하상(丁夏祥)의 안내로 서울에 들어와 전교에 힘썼다.

1837년 김대건(金大建) ·최양업(崔良業) ·최방제(崔方濟) 등을 마카오[澳門]의 오문신학교(澳門神學校)에 유학시켰다. 1839년(헌종 5) 기해박해(己亥迫害) 때 충청도 홍주(洪州:洪城)에서 체포되어 앵베르[范世亨] 주교, 샤스탕[鄭牙各伯] 신부 등과 함께 한강가의 새남터에서 참수(斬首)당하였다. 1925년 교황 피우스(비오) 11세에 의해 시복(諡福)되었고, 1984년 한국 천주교 창설 200주년을 기하여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순교자 103위 시성(諡聖) 때 성인에 추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