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포교회

내포교회

[ 內浦敎會 ]

요약 한국의 충청남도 내포 지방을 중심으로 발전해온 천주교 지역 교회를 이르는 말.
구분 교회
설립일 1784년
주요활동/업무 천주교 신앙 전파
소재지 한국 충남 아산만 일대와 공주, 부여, 논산, 서천 지역

한국 천주교의 창설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충청도 내포지방을 중심으로 변모해온 천주교 지역 교회를 지칭하는 용어이다. 내포지방은 충청남도의 삽교천 서쪽인 아산만 일대를 말하며, 공주·부여·논산·서천 지역을 포함하기도 한다.

내포교회가 이룩된 것은 1784년 (權日身), (金範禹) 등에게 그리스도교 교리를 배운 여사울(현 충남 예산군 신암면 신종리) 출신의 이존창(李存昌)이 입교한 뒤 이를 충청도 일대에 전파하면서부터였다. 이존창은 때 투옥되었다가 석방된 이후 홍산 ·금산, 전라도 고산(高山) 등으로 이주해 다니면서 전교활동을 하였다. 그 결과 이존창은 천주교회 안에서 내포의 사도로 불렸으며, 이후 내포교회는 언제나 한국 천주교의 중심지로서 신앙의 못자리 역할을 하였다.

1868년 무진박해 때까지 이곳은 박해가 있을 때마다 수많은 순교자를 탄생시켰으며, 박해시대 한국에서 활동했던 성직자들은 이곳에서 활동하지 않은 경우가 거의 없었다. 그리고 박해받는 동안 이 지역 신자들이 전라도 북부, 경기도, 충청도 북부, 경상도 지역으로 이주함으로써 그리스도교 신앙이 확산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이 지역을 가장 먼저 담당한 성직자는 1836년 초 입국한 모방(Maubant) 신부였고, 이후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Daveluy) 신부, 최양업(崔良業) 신부 등이 이곳에서 활동하였다.

1861년 제4대 조선 교구장 베르뇌(Berneux) 주교가 전국을 8개 지역으로 나누면서 내포교회는 4개의 지역으로 나뉘게 되었으나 1866년 로
교세가 약화되었다. 1881년 두세(Doucet) 신부는 이곳의 각처에 공소를
설치하고, 1890년에는 퀴를리에(Curlier) 신부와 파스키에(Pasquier) 신부가
이곳에 파견되어 다시 양촌과 간양골의 2개 본당이 설립되었다.

1894년 동학농민운동을 계기로 간양골본당이 폐지되면서 다시 통합되었지만, 이듬해부터는 공세리본당과 공주본당 등 충청도 지역의 본당들이 분리해 나갔다. 그리고 1898년에는 양촌본당을 이전하여 합덕본당으로 개칭하였다.

이후에도 내포교회는 꾸준히 성장하여, 8·15 광복 당시 내포 지역에는 합덕 ·공세리·공주·금사리·서산·예산·천안·당진 등 8개 본당이 자리잡게 되었으며, 그 동안 이곳에서는 수많은 성직자와 수도자를 배출함으로써 성소의 요람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공주의 황새바위·해미읍성, 홍성의 동헌, 청양의 다락골 줄무덤, 보령의 갈매못, 서산의 무명 순교자 묘, 천안의 순교자 묘 등 박해와 관련된 순교 사적지로 인해 신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참조항목

, , ,

카테고리

  •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