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야마 오쿄

마루야마 오쿄

[ Maruyama Ōkyo , 円山応挙 ]

요약 에도 시대(江戶時代) 중기의 화가로 원근법과 음영법을 사용하는 서양화법을 익혀 자연의 객관적 묘사를 제일로 하는 사실주의로 눈을 돌렸다. 또 중국의 사생화풍을 익혀 장식적 효과와 조화를 함께 갖춘 온건한 사생화의 새 양식을 창시하여 마루야마파를 형성, 교토 화단의 일대 세력이 되기도 하였다.
마루야마 오쿄 <소상팔경>

마루야마 오쿄

원어명 まるやま おうきょ
출생-사망 1733.5.12 ~ 1795.7.17
국적 일본
활동분야 예술
주요작품 《우죽풍죽, 雨竹風竹圖》 병풍 , 《설송도, 雪松圖》 병풍

마루야마 오쿄는 1733년 교토 인근 단바(丹波)의 아노무라 지역 농가(農家)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10대에 교토로 가노파(狩野派)의 화가였던 이시다 유테이(石田幽汀, 1721~1786)의 문하에 들어가 그림을 배웠고, 이 시기 유리제품이나 인형 등을 취급했던 오와리야(尾張屋)라는 완구점에서 일하기도 했다. 이 때의 경험은 훗날 서구에서 유입되어 에도시대 부유층 등에 의해 소비되었던 투시도법으로 그린 그림의 일종인 메가네에(眼鏡絵)의 제작으로도 이어졌다.

마루야마 오쿄는 가노파의 필법을 수련했지만 중국 전래의 문인화 등에도 친숙했으며, 18세기 초 유입되던 서양문물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며 서양화에서 나타났던 새로운 시각을 접하였다. 이러한 바탕 위에 마루야마 오쿄는 점차 자연에 대한 치밀한 관찰을 바탕으로 한 객관적 묘사를 추구하는 사실주의를 중심으로 하는 독창적 화풍을 구축해 나갔다.

30대에는 시가현 엔만인(円満院)의 문주(門主) 유죠(祐常)의 후원을 받았으며, 그 후에는 미츠이가(三井家)와 교토의 부유한 상공업자 계층인 마치슈(町衆)의 지지를 받아 실험적인 화풍을 전개해갔다. 특히 신흥 상인층에게는 고전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도 즐길 수 있는 마루야마 오쿄의 독창적이고 새로운 화풍의 그림은 인기를 끌었다.

마루야마 오쿄는 다수의 제자를 두었고 사생을 기초로 한 명쾌하고 자연주의적이며 장식적인 화풍을 특징으로 하는 '마루야마파(円山派)'를 이루었다. 마루야마 오쿄와 그의 화파는 일본 국보인 《우송도병풍, 雪松図屏風》(1786년경)를 비롯, 다수의 장벽화(障壁画) 등을 제작했고, 점점 세력을 더해 도사파(土佐派), 가노파(狩野派)와 함께 일본 간세이(寛政) 연간의 3대 화파를 이루었다.

말년에는 병환에도 불구하고 중단되었던 가가와현(香川県)의 신사 고토히라구(金刀比羅宮)와 다이죠지(大乗寺)의 장벽화를 완성했으며, 1795년 사망했다.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알려진 다이죠지의 《소나무와 공작도, 松に孔雀図》(1795)의 낙관은 마루야마파를 계승한 그의 아들이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풍

마루야마 오쿄는 가노파와 중국 문인화에 대한 이해, 자연의 사실적 묘사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독자적인 화풍을 이루었다. 자연 및 사물에 대한 철저한 관찰을 통해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고자 했고, 이를 서정적이고 장식적인 화법을 통해 화면에 구현하고자 했다.

마루야마 오쿄는 서양화에서 나타난 원근법, 투시법, 음영법 등 새로운 시각적 기법을 실험한 그림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1760년대 주로 그려진 메가네에(眼鏡絵)와 사찰에 봉납하는 말 그림인 에마(絵馬) 등에서 마루야마 오쿄의 이러한 시도가 나타난다. 이러한 실험은 이후 원근법을 응용해 그린 풍속화의 일종인 우키에(浮絵)로, 또 일본의 서양화풍으로 그려진 그림인 '양풍화(洋風画)'의 출현으로 이어진다.

그의 화풍은 또한 당시 일본 화단에 소개되고 있던 송원원체화(宋元院體畵)의 전통적인 사실 표현과 청나라의 화가 심전(沈南蘋)의 세부묘사와 화사한 색채 등을 특징으로 하는 사실적인 화풍에도 영향을 받았다.

대표 작품

마루야마 오쿄의 작품 중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것은 미쓰이(三井) 가문을 위해 그린 《설송도, 雪松圖》 병풍으로 눈이 그친 겨울 아침 정원에 서있는 소나무를 그린 그림이다. 밝고 맑게 표현한 빛의 표현이 높게 평가받는다. 그 외에도 《우죽풍죽, 雨竹風竹圖》 병풍과 《등화도, 藤花圖》 병풍 등이 잘 알려져 있다. 그 외에도 다이조지(大乗寺)의 장벽화와 같은 대작과 족자나 두루마리 그림과 같은 소품 등을 다수 남겼다.

후대 평가

서구의 음영법과 투시법을 사용해 입체감과 공간의 환영을 구현한 마루야마 오쿄의 작품들은 에도시대 후기 회화에서 나타난 새로운 흐름을 이끌었으며, 근대 일본화의 근간을 이루었다고 평가받는다.

참조항목

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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