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브르 궁전

루브르 궁전

[ Palais du Louvre ]

요약 파리의 센 강변에 있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궁전.
루브르미술관

루브르미술관

중세 이후 많은 프랑스 국왕이 이 곳을 거성(居城)으로 하였고, 프랑스혁명이나 파리코뮌 등 쟁란(爭亂)의 무대가 되기도 하였다. 현재는 건물의 대부분이 루브르미술관으로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그 역사는 1200년에 국왕 필리프 오귀스트가 이곳에 성채(城砦)를 축조한 데서 비롯되었다. 왕은 여기에 재보(財寶) ·무기 ·고문서(古文書)를 수장하였으나, 그 후 프랑수아 1세, 샤를 5세 등에 의하여 장려한 왕궁으로 증축되었다. 특히 P.레스코와 J.구종이 맡은 지역은 프랑스 르네상스 건축의 걸작이다.

1563년 앙리 2세의 왕비 카트린 드 메디시스가 왕궁의 서쪽에 튈르리궁전을 세웠고, 앙리 4세 시대에 걸쳐 센강 연변에 ‘물가의 장랑(長廊)’을 증축하여 루브르와 튈르리 두 궁전을 연결시켰다. 이후 이 회랑(回廊)은 주로 궁정의 화가 ·조각가 ·공예작가 등의 주거지 겸 아틀리에로 사용되었다. 루이 13세, 루이 14세 때에는 남관(南館) ·북관 ·동관이 증축되기 시작하여 나폴레옹 3세 때(1860)에 현재의 형식이 완성되었다.

18세기에는 베르사유궁전 조영(造營) 때문에 루브르궁전은 거의 버려진 상태로 있었고, 프랑스혁명 후는 한때 민중에게 개방되었으나, 나폴레옹 치세(治世)에 왕궁으로 부활되었다. 그 후 C.페르시에(1764∼1838), P.퐁텐(1762∼1853) 등에 의하여 수축(修築)과 새로운 장식이 가해졌으며, 카루셀 개선문도 이때에 건설된 것이다. 나폴레옹이 전리품으로 수집해들인 명화나 조각품들이 증가하여 내용이 더욱 충실해졌으며, 7월왕정(1830~1848) 때에 한층 더 늘려 안의 정원이나 아폴론 회랑도 정비되었다. 나폴레옹의 실각으로 한때 중단되었던 증축공사가 그 후 나폴레옹 3세 시대에 더욱 대규모의 구상하에 L.비스콩티(1751∼1818), 르퓌엘 등의 노력으로 부활해 증축되었다. 1870년대에는 다른 부분의 수축도 완성되어 총면적 약 20만 m2에 이르는 현재의 규모로 완성되었는데, 약 4세기가 걸려서 완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