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

도덕

[ morality , 道德 ]

요약 인간이 지켜야 할 도리 또는 바람직한 행동기준.

동양에서 도덕이란 말은 유교적인 어감이 강하고, 실상 유교의 이상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여 근대에 이르러서는 흔히 윤리라는 용어로 쓴다. 그리스어의 'ethos', 라틴어의 'mores', 독일어의 'Sitte' 등이 모두 '습속'이라는 뜻인 것처럼, 원래 도덕이란 자연환경의 특성에 순응하고 각기 그 집단과 더불어 생활하여 온 인간이 한 구성원으로서 살아간 방식과 습속에서 생긴 것이다. 즉 생활양식이나 생활관습의 경험을 정리해서 공존(共存)을 위해 인간집단의 질서나 규범을 정하고 그것을 엄격하게 지켜나간 데서 도덕은 생긴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도덕과 법은 같은 근원에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다만 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법은 사회적 외적(外的) 규제로, 그리고 도덕은 개인적 내적(內的) 규제로 자연히 분화되었을 뿐이다. 계급사회의 성립과 함께 법과 도덕은 정치 지배의 유력한 수단이 되기도 하였으며 그와 함께 법이 국가권력을 지배하고, 도덕이 보편적 원리를 지배하는 영역이 되었다.

서양 도덕의 성격은 여러 폴리스(도시국가)가 이루어진 고대 그리스에서 그 골격이 형성되었다. 고대 그리스는 폴리스를 유지·발전하기 위해서 필요하고 바람직한 사항들을 인간의 가치 있는 자질·목표·도덕이라 하였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대왕의 세계제국(世界帝國)의 성립은 폴리스의 붕괴를 초래하였고, 윤리체계(倫理體系)는 ① 보편(세계)을 지향하는 방향(스토아학파)과 ② 개별(개인)을 지향하는 방향(에피쿠로스학파)의 두 갈래로 나뉘었다. 인간을 다스리는 보편적인 격률(格率)과 개인의 내면적인 격률, 이 두 격률을 통합한 것은 그리스도교였다. 18∼19세기에 이르러서는 J.벤담의 공리주의(公理主義)에 의한 양적(量的) 도덕관에 대해 J.S.밀이 "살찐 돼지보다는 야윈 소크라테스가 되라"는 질적(質的) 도덕관을 내세우고, 이것이 《성서》의 도덕관과 모순점이 없음을 주장하여 그리스도교는 시민혁명을 거치면서 시민의 내면적 규범으로 밀착하였다.

한국에서의 도덕은 일찍이 부족국가와 고대국가의 형성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이는 통치권 보존·생명권·종적(縱的)인 혈연질서·지연(地緣)질서·성질서 및 재산권 보호라는 가장 원초적인 것을 바탕으로 형성되었다. 《한서(漢書)》에서는 "조선사람들은 도둑질을 하지 않아 밤에도 문을 닫지 않고, 여자들은 정조가 굳어 음란하지 않다"고 고조선 사회의 도덕성을 소개하였다. 삼국·고려시대를 거치면서 이러한 기본적인 도덕관은 불교가 이를 뒷받침하였고, 부부의 도(道)는 사람의 대륜(大倫)임을 이미 인식하였다. 유교에 이르러 불사이주(不事二主)의 도덕관은 많은 고려 유신(遺臣)들로 하여금 은둔의 길을 택하게 하였고, 조선의 여성들은 불사이부(不事二夫)와 삼종지예(三從之禮)의 도덕에 평생을 얽어매었다.

조선 후기의 하나님을 택한 천주교도의 순교와 그리스도교의 윤리는 국가도덕에의 일대 도전이었고, 갑오개혁 후의 개가(改嫁) 허용은 500년간 지켜온 도덕의 일대 변혁이었다. 일제강점기, 8·15광복, 6·25전쟁 등 사회 해체와 재구성 과정에서 인간의 행위를 규제하는 공통된 가치나 도덕적 기준이 약화되어 여러 반사회적(反社會的) 또는 부도덕적 행동이 저질러지는 아노미 현상이 발생하였다. 이를 부패·퇴폐, 또는 타락현상이라 개탄하기도 하였으나, 인간사회는 특유한 집단에의 응집성(凝集性) 때문에, 면면히 고수해 온 기본적인 도덕은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참조항목

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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