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문학

농민문학

[ 農民文學 ]

요약 농촌의 자연·지방색, 농민의 생활 실태를 그린 문학.
농민문학기념관

농민문학기념관

농민 스스로 창작한 문학도 농민문학이라 일컫는다. 한국에서 농민문학론(農民文學論)이 처음 제기된 것은 1930년대 초이며, 안함광(安含光)이 《조선일보(朝鮮日報)》에 <농민문학문제>라는 글을 실어 조선의 특수사정 때문에 조선 프로문학은 농민문학을 거치지 않고는 수립될 수 없다고 주장한 것이 그 시초였다.

다시 말하면, 그때까지 농민문학을 노동자문학의 하위(下位)로 생각한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Korea Artista Proleta Federatio)의 문학관을 수정한 것이다. 그 두 달 뒤 백철(白鐵) 역시 《조선일보》에 <농민문학문제>라는 평론을 발표하였는데, 빈농(貧農)과 농촌 현실을 문학의 주제로 삼고, 빈농을 계발(啓發)시켜야 한다는 점에서는 안함광과 의견을 달리하지 않았으나 방법론에서 대립하였다.

안함광은 빈농계급에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를 적극적으로 주입시켜 빈농으로 하여금 혁명 노선에 가담하도록 하여야 한다고 주장한 데 대해, 백철은 농민들에게 처음부터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를 일방적으로 주입시킬 것이 아니라, 농민계급이 자발적으로 프롤레타리아 이데올로기에 호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 뒤에 안함광이 다시 《조선일보》에 <농민문학재론(農民文學再論)>을 폈고, 신인들이 농민문학에 대하여 이론을 폈으나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이데올로기의 형태를 불문하고 1930년대 한국 농민문학에 속할 수 있는 작품은 이광수(李光洙)의 《흙》, 이기영(李箕永)의 《고향》, 한설야(韓雪野)의 《탑(塔)》, 김유정(金裕貞)의 《동백꽃》, 김남천(金南天)의 《생일 전날》, 심훈(沈熏)의 《상록수(常綠樹)》, 이무영(李無影)의 《흙의 노예》와 《제1과 제1장》, 김동리(金東里)의 《산화(山火)》, 현덕(玄德)의 《남생이》, 박영준(朴榮濬)의 《모범경작생》과 《목화씨 뿌릴 때》 등이다. 1970년대가 시작되면서부터 문단에서는, 주로 30대의 평론가들 사이에 사실주의·반사실주의의 논쟁과 문맥을 같이 한 농민문학론, 즉 농촌문학론이 전개되었다.

1930년대의 프로문학이 주류를 형성했던 시대의 농민문학논쟁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이 문제가 다시 제기된 것이다. 그것은 한국이 전통적으로 농업국가이며 지금도 농업이 가장 기본적인 산업인 나라의 문학에서, 농촌문학에 대한 이론이 빈약하다는 것은 그 자체가 한국의 사회현실의 역리와 허구성을 드러내는 형상이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염무웅(廉武雄)의 《농촌문학론》(1970)에서 발단되었다. 박경수(朴敬洙)의 작품 《동토(凍土)》의 농촌문학으로서의 실태를 분석 평가한 이 글에서 그는 농촌을 모르고서 한국의 사회현실을 안다고 할 수 없고, 현실을 모르고서 그 현실에서 태어난 문학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없다고 지적한 다음, 도시와의 상관조직 속에서 한국 농촌의 역사적·사회적 상황을 파악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 후에도 농민문학에 대한 이론 전개가 몇 사람에 의해 시도되었다. 그들 주장의 골자는 지금까지의 한국 농촌문학, 예를 들면 이광수·심훈·이무영 등의 농촌 작품이 일제(日帝)의 식민지 농촌의 수탈현상이나, 자본주의 경제체제가 그 속성으로 안고 있는 취약성, 또는 한국 농업이 처해 있는 역사적 생산 조건 따위에 대한 통찰력이 없으므로, 허다한 문학적 결함과 이론적인 한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들은 김정한(金廷漢)의 창작집 《인간단지(人間團地)》 속에 실린 작품세계를 높이 평가하여 이들 작품 속에는 한국 농촌이 처해 있는 역사적 현실을 옳게 투시하는 사실주의 정신이 있다고 단정하였다. 1973년에도 농민문학에 대한 논쟁이 있었는데, 여기에 가담한 대표적인 사람은 염무웅과 김치수(金治洙)였다.

염무웅은 토지의 농민적 소유는 어느 정도 실현되었으나, 유통구조를 포함한 정치·경제의 여건은 농민의 민주시민화를 가로막아 왔으며, 특히 1960년대 이후의 공업화 과정은 농촌의 분해를 더욱 심각하게 만들었다고 말하고, 따라서 작가는 이런 현상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김치수는 농민문학의 필요성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농민문학이 농촌 혹은 농민을 소재로 한 작품이라면 그것은 일종의 소재주의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하고, 소재주의가 한국인의 삶을 전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하게 할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였다.

1970년대를 전후하여 나타난 한국문학에서 농촌소설에 속할 수 있는 것은 김정한의 《유채(油菜)》, 오유권(吳有權)의 《농지정리(農地整理)》, 박경수의 《동토》, 하근찬(河瑾燦)의 《야호(夜壺)》, 유승규(柳承畦)의 《농기(農旗)》, 방영웅(方榮雄)의 《분례기(糞禮記)》 등이다. 농민시로서는 신동엽의 《금강》(1967), 구상(具常)의 《밭일기》(1967), 신경림(申庚林)의 《농무(農舞)》(1973) 등이 있고, 농민을 소재로 한 희곡으로는 유치진(柳致眞)의 《소》(1934), 이무영의 《아버지와 아들》(1934), 1970년대 이후에 발표된 노경식의 《소작의 땅》 등이 있다.

한편, 외국에서의 농민문학은 프랑스에서는 조르지 상드에서 발자크(대표작:마농의 샘)와 졸라를 거쳐 지방주의(地方主義)에 이르고, 다시 제1차 세계대전 후의 신지방주의의 흐름, 독일의 향토문학, 러시아에서의 나로드니키 시대로부터 혁명 전후의 에세닌과 네에로프를 거쳐 숄로호프에 이르는 전통, 또 폴란드의 레이몬트, 노르웨이의 비에른손, 그리고 아일랜드의 농민문학 등은 널리 세계에 소개되었다. 미국에서도 P.S.벅 또는 J.스타인벡의 작품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