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트

낭트

[ Nantes ]

요약 프랑스 서부 루아르아틀랑티크 데파르트망(Department)의 수도.
낭트대성당

낭트대성당

위치 프랑스 서부
경위도 서경 1° 33′ 10″, 북위 47° 13′ 05″
면적(㎢) 65.19
시간대 CET (UTC +1)
행정구분 7 캉통(canton)
행정관청 소재지 2 rue de l'Hôtel de Ville 44 094 Nantes Cedex 1
홈페이지 www.nantes.fr
인구(명) 306,694(2016년)

파리에서 남서쪽으로 394km 거리에 있는 도시로 세브르낭테즈강·에르드르강 등의 지류가 루아르강에 합류하는 하구 지점에서 54km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외항선의 항행도 가능하며, 외항(外港) 생나제르와 함께 프랑스 굴지의 무역항을 이루고 있다. 북·서아프리카, 영국, 발트해(海) 제국을 상대국으로 석탄·석유·유지·철광·목재 등을 수입하고 기계류·밀가루 등을 수출한다. 또 공업의 발달도 현저하여 통조림·제당·제과·제분 등의 식품공업, 정유·비누·비료 등의 화학공업, 야금·조선·각종 기계·섬유·피혁 공업 등이 성하다.

인구는 2016년 기준 306,694명으로 프랑스에서 인구수 기준 6번째로 큰 도시이다.  루아르 어귀의 연안항(seaport)인 생나제르와 함께 프랑스 북서쪽의 대도시권을 형성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공상 과학 소설 작가 쥘 베른의 고향이기도 하다.

기후

해양성기후(쾨펜기후구분: Cfb)를 가지고 있으며 겨울은 춥고 잦은 비가 내린다. 겨울 평균기온은 5°C 이고 눈은 잘 내리지 않는다. 여름 평균기온은 18.5°C 정도이며 연평균기온은 12.5°C이다.

역사

낭트에 가장 처음으로 인류가 정착한 것은 청동기시대로 추측된다. 갈리아시대에는 남네테족(族)의 수도였는데, 낭트라는 도시명의 어원은 이 남네테(Namnètes)에서 따온 것이다. 로마시대에는 렌과 함께 브르타뉴 지방의 중심도시이자 상업 중심지로 기능하였으며 834~936년에는 노르만족에 의해 지배당하였다. 13세기부터 브르타뉴 공작령의 수도가 되었다. 14세기에는 영국군의 공격을 이겨내고 독립을 지켰으나, 1524년 프랑스에 합병되었다.

종교전쟁(1562-98) 시기에는 가톨릭 동맹(Catholic League) 쪽이었으며 1598년 앙리4세가 낭트칙령을 발표한 것도 이곳에서였다. 프랑스 혁명 시기에는 카리에(Jean-Baptiste Carrier)에 의한 왕당파 학살이 행하여졌으며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독일에 점령당했다.

17∼18세기에는 서인도제도(諸島)와의 거래, 특히 노예무역으로 번영하였는데, 노예무역은 19세기 초까지도 낭트의 주 수입원이었다. 낭트는 1827년까지도 불법적인 대서양 무역을 행하던 마지막 프랑스 항구였다. 

20세기 초 도시 내를 흐르는 강의 물길들이 시의 경제개발을 저해한다고 판단, 이를 전면적으로 준설하는 작업이 진행되었는데 이를 통해 지금의 페도(Feydeau)와 글로리엣(Gloriette)이 강의 북쪽에 위치하게 되었다. 이러한 도시 개발이 마무리될 즈음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도시의 일부가 파괴되고 독일에 의해 점령당하기도 하였다. 전통적인 산업인 식품가공업, 공업과 제조업 등이 여전히 경제의 주축을 담당하나 최근에는 생명공학 분야 산업이 급성장하고 있다.

시가

낭트는 프랑스의 일반적인 도시들이 가지는 형태를 동일하게 따르고 있는데, 역사적 흔적을 간직한 역사지구와 행정청들을 중심으로 점차 확장, 발전해온 형태이며 도심에는 좁은 골목과 목재건물, 석재 건물과 전쟁 후 재건된 현대적인 건축물들이 혼재되어 있는 모양이다. 낭트 대성당 너머 동쪽으로는 전통적으로 귀족들이, 루아르 강변을 따라 서쪽에는 주로 부르주아들이 거주하였다.

산업

경제에 있어 오랫동안 루아르강과 대서양에 인접한 지리적 영향을 받아 번영을 이뤘던 낭트 항구였지만 19세기 중반부터는 르아브르마르세유가 프랑스의 주요 항구로 기능하며 상대적으로 침체되기 시작하였다. 이 두 항구가 산업혁명을 받아들이며 발전하는 동안 낭트는 뒤처지게 되었고 1851년이 되어서야 많은 비판과 반대를 무릅쓰고 철도가 놓이기 시작했으며 투르-생나제르(Tours-Saint-Nazaire) 선을 통해 파리와 연결될 수 있었다.

19세기 하반기에는 산업 도시로 활약하였고 1900년 도시의 주요 산업은 식품가공업(특히 통조림)과 조선업이었다. 낭트는 이를 바탕으로 항구의 활기를 유지하고 농업, 설탕 수입, 비료 생산, 금속가공업 등의 산업을 발전시켰다.

1970년대에는 전세계적 경제공황에 함께 영향을 받으며 낭트 내 많은 공장, 특히 조선소들이 문을 닫게 되어 70~80년대 낭트 경기침체의 원인이 되었다. 1989~2012년 사이 장-마르크 아이로(Jean-Marc Ayrault) 시장의 진두지휘 하에 주력 산업을 서비스 쪽으로 전환하며 도시 경제의 발전을 꾀하였다.

식품가공 분야에서 특히 정제설탕, 비스킷, 통조림 등이 유명하며 낭트에 본사를 둔 베긴 세이(Beghin-Say), LU, BN 비스킷(BN Biscuit), 생선 통조림 브랜드인 소피켓(Saupiquet), 가공야채회사인 봉뒤엘(Bonduelle), 꺄스그랭(Cassegrain) 등의 브랜드는 프랑스 식료품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교통

도시에서 고속도로를 통해 프랑스 각지로 이동할 수 있으며 테제베(TGV) 또한 파리, 릴, 리옹, 마르세유, 스트라스부르 등지로 연결된다. 도시 내에는 낭트 아틀랑티크 공항이 있으며 시내 대중교통으로 트램, 버스 등을 이용할 수 있다.

교육

낭트에는 국립 종합대학교인 낭트대학교가 있다. 낭트대학교는 1460년 처음 설립되었고 당시 규모 있는 대학으로 성장하지 못하다가 1793년 프랑스 혁명 당시 문을 닫았다. 지금의 낭트대학교는 1961년 다시 문을 연 것이다.

관광

도시 내 주요 관광지로는 1976년 144m의 높이로 세워져 낭트에서 가장 높은 타워인 브르타뉴 타워(Tour Bretagne), 1843년 낭트 중심부에 들어선 쇼핑몰인 파사쥬 폼레이(Passage Pommeraye) 쇼핑아케이드, 브르타뉴 공작성(Château Ducs de Bretagne)과 성 내에 있는 낭트 역사박물관(Musée d'histoire de Nantes), 버려진 조선소와 공장 폐허를 재개발하여 만든 기계 테마마크 레 마신 드 릴(Les Machines de L’ile)과 공원 내에 쥘 베른 소설에 영감을 받아 설치된 르 그랑 엘레팡(Le Grand Elephant) 이라는 초대형 코끼리 모형이 유명하다.

그 외에도 낭트에서 가장 큰 규모의 아트 갤러리 Hab 갤러리(Hab Galerie). 노예제 폐지 기념비(Mémorial de l'abolition de l'esclavage), 낭트에서 가장 큰 규모인 낭트 미술관, 프랑스에서 가장 큰 박물관 중 하나인 낭트 자연사 박물관, 쥘 베른 박물관, 낭트 대성당(생피에르와 생폴 대성당; Cathédrale Saint-Pierre-et-Saint-Paul de Nantes)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