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자레파

나자레파

[ Nazarene movement ]

요약 19세기 초에 활약한 독일 낭만파 화가의 한 그룹. 미술의 본래 순수성을 회복하려는 목적에서 초기 르네상스의 소박한 정신세계와 독일 민족주의의 정서를 결합시키고 낭만주의적인 감성을 작품에 담았다. 로마의 수도원에서 수도사와 같은 생활을 영위하여 ‘나자레파’라는 이름이 붙었다.
원어명 Nazarener
구분 미술가 집단
설립일 1810년
설립목적 미술의 순수성과 영성 회복
주요활동/업무 수도사 같은 생활을 영위하며 성서와 종교적 관념을 지향한 작품 제작
소재지 로마의 옛 성 이시도르 수도원

1809년 요한 오버베크(Johann Friedrich Overbeck)와 프란츠 프포르(Franz Pforr)를 비롯한 여섯 명의 빈 아카데미 학생들이 전통적인 아카데미즘에 반기를 들고 회화 본래의 순수성을 회복하려는 목적으로 ‘성 루카 형제회(Lukasbund)’를 결성했다. 이들은 독일 낭만주의 철학을 대표하는 아우구스트 폰 슐레겔(August Wilhelm von Schlegel)의 이론에 영감을 받아 종교적이고 애국적인 관점에서 회화를 급진적으로 개혁하겠다고 결심했다.

이듬해인 1810년 성 루카 형제회는 활동 무대를 로마로 옮겨 핀초 언덕의 옛 성 이시도로 수도원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서 피터 폰 코르넬리우스(Peter von Cornelius), 율리우스 슈노르 폰 카롤스펠트(Julius Schnorr von Carolsfeld), 프리드리히 빌헬름 폰 샤도(Friedrich Wilhelm von Schadow), 필리프 파이트(Philipp Veit), 요제프 폰 퓌리히(Joseph von Führich) 등 다수의 화가들이 이 그룹에 가입했다. 이들은 성경 속의 인물처럼 복장과 머리모양을 하고 거의 수도사와 같은 생활을 영위했는데, 이러한 생활방식을 조롱하여 사람들은 이들을 ‘나자렛인’이라고 불렀고, 이는 그대로 그룹의 명칭이 되었다.

나자레파는 깊은 신앙적 열정으로 새로운 종교화의 이상 실현을 지향하는 작품 제작에 몰두했다. 주로 성서와 종교적 전설을 주제로 한 그림을 그렸으며, 라파엘로 산치오(Raffaello Sanzio)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를 모범으로 삼았다. 그들은 초기 르네상스의 소박한 정신세계로 복귀하여 색채에 의한 낭만주의적 감정의 고취를 추구했다. 또한 중세 장인들의 공동제작 정신을 되살려 공동 작업을 하기도 했다.
 나자레파 화가들은 여러 개의 대규모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프로이센의 총영사로 로마에 파견된 야콥 루드비히 살로몬 바르톨디(Jakob Ludwig Salomon Bartholdy)의 저택 카사 바르톨디에 ‘요셉 이야기’를 주제로 한 프레스코화 연작과 카를로 마시모(Carlo Massimo)의 빌라였던 ‘카지노 마시모’의 프레스코화가 유명하다. 또 오버베크가 그린 《이탈리아와 게르마니아》(1828)는 중세 독일 문화와 이탈리아 르네상스 문화의 융합을 추구했던 나자레파의 이상이 잘 구현된 작품이다.

나자레파는 1830년을 즈음하여 오버베크를 제외한 거의 모든 화가들이 로마를 떠나면서 곧 해체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미술은 당시 독일미술에 크게 이바지했을 뿐 아니라, 19세기 후반의 독일미술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또한 순수주의와 영국의 라파엘로 전파에도 영향을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