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드 브라운

포드 브라운

[ Ford Madox Brown ]

요약 영국의 화가.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미술가의 한 사람으로 라파엘 전파의 회화 양식을 정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근대인의 삶과 사회적 이슈를 주제로 독창적인 구성과 자연주의적인 세부묘사를 특징으로 하는 작품을 선보이며 영국 회화의 혁신을 이끌었다.
영국의 최후

영국의 최후

출생-사망 1821.4.16 ~ 1893.10.11
국적 영국
활동분야 회화, 삽화, 가구 디자인
출생지 프랑스 칼레
주요작품 《영국의 최후 The Last of England》(1855), 《노동 Work》(1852~1865), 《에드워드 3세의 궁에 있는 초서 Chaucer at the Court of King Edward III》(1856~1868)

포드 매독스 브라운(Ford Madox Brown)은 1821년 프랑스 칼레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모두 영국인으로 그의 아버지는 영국과 유럽 대륙을 이어주는 도버해협에 면한 프랑스의 항구도시 칼레에서 여객선 사무장으로 일했다. 덕분에 브라운은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유럽 대륙에서 보냈다. 그는 1845년 영국에 정주하기 전까지 브뤼헤와 겐트, 안트베르펜, 파리 등지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로마에서는 독일 화가 요한 프리드리히 오베베크(Johann Friedrich Overbeck)의 나자레파 그룹을 만나 중세미술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

정통기법을 연마한 브라운은 초기에 낭만적이고 역사적인 주제를 어두운 색채에 극적인 분위기로 묘사했다. 그러다가 이탈리아 여행 중 나자레파를 만나면서 색채와 양식에 변화를 가져왔다. 그는 점차 종교적이고 사회적인 주제로 기울어져 갔고, 화려하고 선명한 색채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근대인의 삶과 사회적 이슈들을 주제로 다룬 이들 작품에서는 참신하고 독특한 구성과 강한 색채, 자연주의적인 세부 묘사가 두드러진 특징으로 나타났다. 브라운은 런던에 정착하면서 이러한 사회인식에 대한 문제를 주제로 한 작품을 선보이며 아카데미가 지배적인 미술풍토에 반기를 들었으나 그의 작품은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1848년 브라운은 한동안 단테이 게이브리얼 로세티(Dante Gabriel Rossetti)에게 미술을 가르쳤고, 존 에버렛 밀레이(John Everett Millais)와 윌리엄 홀먼 헌트(William Holman Hunt) 등 라파엘 전파 화가들과 친분을 쌓았다. 그는 라파엘 전파에 공식적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이 그룹이 발행하는 『기원 The Germ』지에 글을 기고하며 라파엘 전파의 회화 양식을 정의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초기 르네상스 미술이 보여준 순수함을 모방하려 했다는 점에서 라파엘 전파와 공통된 열망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끝까지 이 그룹의 주변인으로 남았다.

브라운은 1850년대 초중반부터 대표작들을 쏟아내며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1856년에는 영국의 시인이며 공예가인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와 함께 삽화가로도 일했고, 1861년에는 실내 장식회사인 모리스 마샬 포크너사(社)의 창립 회원이 되었다. 이곳에서 그는 가구 디자인과 스테인드글라스를 제작했다. 1878년에 그는 맨체스터 시청사 건물에 이 도시의 역사를 보여주는 12점의 거대한 벽화를 그려달라는 의뢰를 받고, 이 프로젝트를 완성하는 데 말년을 보냈다. 브라운은 1893년 런던에서 72세를 일기로 생을 마감했다.

주요 작품에는 《영국의 어느 가을 오후 An English Autumn Afternoon》(1852~1853), 《영국의 최후 The Last of England》(1855), 《노동 Work》(1852~1865), 《에드워드 3세의 궁에 있는 초서 Chaucer at the Court of King Edward III》(1856~1868), 《로미오와 줄리엣 Romeo and Juliet》(1870), 《자화상 Self-Portrait》(1877)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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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포드 브라운의 작품 출처: doopedi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