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원

김이원

[ 金履元 ]

요약 조선 중기의 문신. 정유재란 때 경기도관찰사가 되어, 명나라 군사에게 시달렸던 도내 행정을 바로잡았다. 대북에 속하여, 1609년 임해군을 사사하게 하고, 1612년 김직재의 옥사를 다스려, 2번 훈봉을 받았으나, 인조반정으로 훈작이 추탈되었다.
출생-사망 1553 ~ 1614
본관 선산
수백
소암
별칭 초명 신원 ·숭양부원군

본관 선산. 자 수백(守伯). 호 소암(素菴). 초명 신원(信元). 1576년(선조 9) 사마시에 합격하고, 1583년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호조좌랑 ·수찬 ·정언 등을 지냈다. 1593년 의주목사(牧使)로 나갔을 때 흉년으로 굶주린 백성이 많자, 명나라 곡식을 들여와 구제하였다.

1597년 정유재란 때 경기도관찰사가 되어, 명(明)나라 군사에게 시달렸던 도내 행정을 바로잡았다. 대북(大北)에 속하여, 1609년(광해군 1) 임해군을 사사(賜死)하게 하고, 1612년 김직재(金直哉)의 옥사를 다스려, 2번 훈봉을 받아 숭양부원군(嵩陽府院君)으로 봉해지고 병조판서 ·중추부판사를 역임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으로 훈작이 추탈(追奪)되었다. 1752년(영조 28) 경기 양평군 양백산(陽白山)에 신도비(神道碑)가 세워졌다.

역참조항목

선산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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